삶이 묻어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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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봉예(문헌정보.03)
  • 승인 2004.10.09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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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묻어나는 이야기

 요즘처럼 햇살이 눈부신 날이면, 갈색의 나뭇가지를 엮어서 만든 소풍용 가방 안에 샌드위치, 과일, 음료수를 담아 자전거를 타고 가로수가 길게 이어진 어느 곳에 누군가와 함께 소풍을 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한참을 그러고 나면, 소풍 전날 기쁨에 가슴 설레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내 어린 시절의 소풍들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때는 1997년 어느 봄날, 부산 중앙여중 전교학생은 소풍가는 것으로 들떠 있었다. 친구들과 나는 소풍날 가지고 갈 이것저것을 함께 정했고, 그 날을 위한 이벤트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소풍’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김밥과 장기자랑 아닌가? 김밥이야 어머니께서 싸 주실 테니 우리가 할 일은 장기자랑을 열심히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우리 넷은 무엇을 할까 고민 고민을 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모두들 기억하는가? 세 명의 앳된 소녀들이 나와 불렀던 ‘I’m your girl’ 이라는 노래를.우리는 며칠 밤을 교실 문 걸어 잠그고 춤 연습에 몰두했다.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내 잘 봐라. 이렇게 하는 거다. 알겠나?” 춤을 잘 추는 한 친구에게 수없이 지적을 당하며 우리의 초특급 이벤트는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소풍 전날아침 우리는 완벽한 S.E.S가 되기 위해 모두 원피스를 입고 오기로 중대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 “너희 내일 치마입고 오면 다 죽는다. 알겠나?”

 
 이런 날벼락이. 우린 망연자실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선생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당당히 원피스를 입고 소풍날 등장했다. 친구들의 시선을 즐기며. 드디어 장기자랑 시간이 돌아왔고, 우린 떨려서 그랬는지 동작도 다 틀리고 네 명의 호흡도 전혀 맞지 않았다. 다 끝난 후 들려오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박수소리. 정말이지 부끄러웠다. 이렇게 나의 중학교 2학년 봄 소풍은 끝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느낀 그 부끄러움도 소중한 하나의 추억이 되어 나를 미소 짓게 한다.따뜻한 추억이 된 내 어린 시절의 소풍. 친구들과 마냥 행복했던 그때가 너무도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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