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덕성여대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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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경(09년도·문화? >
  • 승인 2004.10.0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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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산과 나왔어? 특이하네~”

 대학시절 전공을 물은 사람들의 한결 같은 대답이다. 하긴 전산과를 나와 잡지에서 기자‘질’이라니 범상치 않은 진로선택이긴 하다. 하지만 뭐, 나는 대학시절 공공연히 “나는 ‘신문발송’학과야!”라고 다닐 정도로 전공과는 담 쌓고 살았으므로 그럭저럭 뭐, 아주 이상한 진로 변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학보사 생활을 무지하게 성실하게 했던 기자도 아니고, 우리 학번의 영원한 ‘불량 기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잡지사로 간 나의 생활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어언 10년차가 되어 팀장까지 해먹었으니, 이것도 어영부영 시작해 부장까지 하고 나온 학보사 시절과 꽤 닮았다.

 내용이야 어쨌든 그래도 같은 ‘기자질’이라고 사회생활을 하며 나는 문득문득 학보사 시절이 떠올랐다. 인터뷰를 마친 후 취재수첩을 정리하며 원고 준비할 때의 가슴떨림, 좋은 문구가 떠오르지 않는 나쁜 머리를 학대하며 원고를 쓸 때의 초조함은 그게 어디든 같았다.  정인지, 믿음인지 여대에선 보기 힘든 학보사 선후배, 동기 간의 끈끈한 유대는 여자 기자가 대부분인 잡지판에서도 비슷했다. 그러니 전공만 가지고 누가 딴지를 걸지 않는다면 나는 대학 ‘경험’과 ‘전공’을 살려 사회에 제대로 진출한 셈이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엔 취재를 하고 오면 가슴이 뛰었다. 인터뷰어에게 들은 또 다른 세상, 어떤 세상은 아름다웠고, 어떤 세상은 가슴 아팠다. 때론 눈물도 흘렸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달랐다. 물론 이때도 울고 싶을 때가 있긴 했다. 섭외 안될 때, 힘들게 잡아놓은 촬영을 어떤 ‘놈’이 펑크낼 때, 일이 산더
미처럼 배당될 때 등등. 철저히 결과 위주였고, 과정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잦은 철야로 아침에 회사문을 나설 때 나를 채운 건 ‘뿌듯함’이 아니라 ‘자괴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0년이 넘도록 잡지기자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대학시절 무료인데도 학우들이 읽어주지 않아 뽀얗게 먼지가 쌓여있는 학보를 보며 가슴 쓰렸던 것에 비해, 돈을 주고 잡지를 사서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매달 수 만 명이라는 자족감이 날 잡아두었다. 하지만 이런 만족감에도
불구하고 난 몇 달 전 회사를 그만두었다. 물론 사회생활 10년의 경력을 버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만 행복할 것이 아니라, 남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기 위해 때로는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나는 대학 학보사 시절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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