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작가와의 대화 '김영하' 초록
제4회 작가와의 대화 '김영하' 초록
  • 배은정 기자
  • 승인 2004.10.13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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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문학적 입장
 현대인들이 김영하의 소설을 읽었을 때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하게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어떤 사회적 실천미를 적극적으로 키워 가는 소설들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소설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사실 저의 문학적인 입장입니다. 예컨대 가장 엽기적인 소설들이 인간을 정화시키기도 하는 반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설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기묘한 변화
 우리 주위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고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봐야할까요? 최근, 장화·홍련이 소설적 창작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라는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잠시 장화·홍련 이야기에 대해 살펴보자면 평안도 철산의 배좌수가 새부인 허씨를 들이게 됩니다. 배좌수에게는 장화와 홍련이라는 딸이 있었고 장화는 혼기를 맞아 시집을 가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허씨는 자기가 낳지도 않은 장화를 시집보내기 위해 이것저것 혼수를 마련할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파 시집을 보내지 않기 위한 계략을 짜게 됩니다. 새끼쥐의 껍질을 벗겨서 장화가 잘 때 이불 속에 넣어놓고 다음날 아침에 들춰보아 장화가 애를 낳았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게 되었지요. 딸이 수치스러웠던 배좌수는 허씨의 아들을 시켜 장화를 죽이게 되고, 홍련이는 장화를 따라 죽게 됩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실화는 소설이 되면서 변화하게 됩니다. 딸을 죽인 배좌수는 선한 배좌수로, 허씨 부인은 젓갈로 담궈지는 처벌을 받게 되는 것으로 바뀝니다. 장화와 홍련이도 환생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이 나지요. 현실은 처참하고 엽기적인 살인사건인데 소설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변화했습니다.
 왜 변화했을까요? 그 당시 떠돌이 이야기꾼에 의해 장터에서 전해지던 여러 판본들이 살아남으려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야 했기 때문이지요. 엽기적인 살인사건인 실제 이야기는 대중들로부터 배격당하게 된 것이죠. 즉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독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는 흘러가기 때문에 점점 변하게 되고 그럴수록 이야기는 더 복잡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을 웃기고 울리는 이야기들은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을 다룬 영화들을 봐도 절대 직접적으로 전쟁을 반대해야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들은 하지 않죠. 직접적으로 ‘전쟁은 안돼, 전쟁은 안돼’라는 주제를 전하는 영화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전쟁에 대한 반발만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미학적이고 세련된 이야기로 관객이 전쟁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게 해야지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문학이 가진 복잡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만큼 예술은 정치나 과학, 교훈 그 너머에 있어 쉽지가 않습니다.

김영하가 생각하는 작가

 당대의 작가로서 산다는 것은 대단히 멋진 일입니다. 작가들의 삶에 대해 비관적인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실제로 작가들의 삶은 매년 꾸준히 나아지고 있습니다. 주변의 다른 작가들을 봐도 8∼90년도에 비해서 훨씬 나아졌습니다. 국민소득이 늘어나면서 문화와 예술을 받아들일 여력이 많이 넓어졌고, 자본주의의 중심의 시장의 거래가 활발할수록 문화와 예술인들의 대우는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작가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운동권 소설이 난무하던 8∼90년대에 비해 지금은 정말 다양한 작가들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또한 자신의 고통을 특권화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영화 감독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할 것이고 음악가도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작가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자기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과 달리 자기 자신의 정신적 성장과 함께 하기 때문에 자기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직업 중에 하나입니다.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글을 쓰려면 방대한 양의 책을 읽어야하고 세상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직업인만큼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만큼 심리학에 정통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대단한 잡학가가 되기를 권합니다. 소설가들은 죽을 때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한 호기심들이 언제, 어디서 소설의 재료가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잡학다식 할 수록 할 말은 많아집니다. 설사 독자에게 비판과 질책의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당대의 평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습니다.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창작을 하고 작가로 산다는 매력적인 일입니다. 작가가 되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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