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화법이라는 과목이 없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글을 배웠지 말을 배우지는 않았던 것이다. 말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너는 커서 변호사가 되겠다.”라든가 “아나운서가 되어라.”라는 말이 덕담이 있었을 정도로 우리 세대에겐 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선물이며 천부적인 것으로 여겼을 뿐이다.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말도 교육이 필요했고, 훈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한 때에 자랐던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에 대한 부담은 공포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말을 참 잘한다.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잘 대응한다. 논리적인 말도 잘 한다. 하지만 말에 품위가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은어나 욕설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가 하면 인터넷에서나 사용하는 축약된 말들을 공적인 상황에서도 과감히 사용한다. 유머도 잘 구사하지만 단순한 언어 유희이거나 타인을 공격하는 폭력적인 놀이일 경우가 많다.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면 저 사람이 과연 대학생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품위가 없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용모가 좋으면 좋을수록 그 실망도 크다. 문제는 그러한 말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말이 틀렸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더하다.
옛 선인들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사람됨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으로 삼아 왔다. 여기서 언(言)이란 말을 고운 말씨를 의미한다. 선한 인성에 바탕을 둔 화법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현대 교양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 것 이상이다. 정확한 말, 예의 있는 말, 논리적인 말, 재미있는 말 등 너무나 많다. 또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말 같지만 거기에는 엄연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약속, 즉 규칙이 있다. 화법 수업을 통해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기본적인 규칙들을 익히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과연 적절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는가? 나의 말로 인해 나의 인격을 의심받은 적은 없는가?- 자신을 수정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