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규칙이 있다
말에도 규칙이 있다
  • 본교 강사 배현숙
  • 승인 2004.11.0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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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 내 자신이 대학에서 화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내가 과연 화법을 가르칠 자격이 있을까? 남들의 평가에 의하면 말이 거칠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돌려서 말하기보다 직접적인 말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며, 감사의 말이나 사과의 말에도 인색하다. 유머는 좀 있는 편이기는 한데 그 말끝이 강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언어 폭력을 휘두르고 있기도 한다. 자제가 안 되는 성량(聲量) 때문에 가끔은 부탁의 말을 하면서도 시비를 거는 말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화법을 가르치는 지금을 나를 반성하고 내가 배우는 기회로 삼고 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화법이라는 과목이 없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글을 배웠지 말을 배우지는 않았던 것이다. 말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너는 커서 변호사가 되겠다.”라든가 “아나운서가 되어라.”라는 말이 덕담이 있었을 정도로 우리 세대에겐 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선물이며 천부적인 것으로 여겼을 뿐이다.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말도 교육이 필요했고, 훈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한 때에 자랐던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에 대한 부담은 공포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말을 참 잘한다.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잘 대응한다. 논리적인 말도 잘 한다. 하지만 말에 품위가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은어나 욕설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가 하면 인터넷에서나 사용하는 축약된 말들을 공적인 상황에서도 과감히 사용한다. 유머도 잘 구사하지만 단순한 언어 유희이거나 타인을 공격하는 폭력적인 놀이일 경우가 많다.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면 저 사람이 과연 대학생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품위가 없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용모가 좋으면 좋을수록 그 실망도 크다. 문제는 그러한 말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말이 틀렸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더하다.
 

 옛 선인들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사람됨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으로 삼아 왔다. 여기서 언(言)이란 말을 고운 말씨를 의미한다. 선한 인성에 바탕을 둔 화법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현대 교양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 것 이상이다. 정확한 말, 예의 있는 말, 논리적인 말, 재미있는 말 등 너무나 많다. 또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말 같지만 거기에는 엄연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약속, 즉 규칙이 있다. 화법 수업을 통해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기본적인 규칙들을 익히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과연 적절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는가? 나의 말로 인해 나의 인격을 의심받은 적은 없는가?- 자신을 수정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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