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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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소진(국문ㆍ3)
  • 승인 2004.11.0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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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emoiselle...... Lee"


 준드레스 차림에 온 몸에서 그야말로 엘레강스가 흘러내리는 불어 선생님이 질문할 학생을 물색하다 친구를 부른다. 일주일에 3번,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어 시간이면 모두들 팔꿈치를 책상에 올려놓고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이 이마에 손을 얹어 시야를 가린 뒤, 거북이가 등껍질에 머리를 집어넣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하필 친구가 걸린 것이다. 번쩍 얼굴을 들며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친구. 옆에서 키득거리는 나. 지금 생각해도 지그시 웃음이 나는 풍경이다.
 

 목소리가 걸걸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호남형(?)에 불어를 좋아했던 나는 불어시간마다 무슈김 역할을 했는데, 나를 제외한 43명의 마드모아젤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한 친구가 있다.
 

 그러니까 때는 4년 전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술렁이는 다른 반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김없이 오늘의 마드모아젤을 물색하는 선생님의 눈빛을 피해 우리끼리 시선을 주고 받았고 한 친구가 갑자기 책을 집어 던지며 다른 친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 해 전국 청소년 예술제에서 대상을 받은 연극반의, 주연급 배우 두 명이다. 나머지 애들이 보기에도 너무 리얼해서 ‘저것들 너무 무리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리의 우아한 불어 선생님은 오죽했으랴. 선생님은 떨리는 손을 가슴에 얹으며 아이들을 말리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무슈 김을 찾았고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배우들에게 컷 싸인을 보내며 힘들게 싸움을 말리는 척 했다.
 

 사태가 진정되자, 선생님은 두 친구에게 왜 싸웠는지를 물으셨고 그제야 “만우절이잖아요 선생님, 놀라셨죠?!” 하고 철없이 웃고 끝내기엔 자기들이 너무 열연했음을 깨닫고 떠듬떠듬 한다는 소리가 글쎄 “Monsieur Kim에게 물어 보세요” 였다. 세상에 이런 상황에서 무슈 김을 찾다니, 두 배우의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애드립에 모두들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렸고 나중에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선생님도 그렇게 불어가 어렵냐며 웃으셨다. 물론 다음 시간에 더 빨리 더 많은 마드모아젤을 찾으며 우리들에게 앙갚음을 하셨지만 어쨌든 그 때는 모든 걸 용서하는 분위기였다.
 

 그 날 이후 나는 모든 선생님께 “Monsieur Kim"으로 통했고, 이제껏 동창들에게 무슈김으로 불리고 있다. 엄연한 마드모아젤에게 엉뚱한 별명을 붙여 준 웬수같은 그 친구는 진짜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연극영화과에 들어가 맹활약 중이고 가끔 연락을 하면 그 때 이야기를 하며 에드립 실력은 길렀냐며 우스개 소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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