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사상-나는 누구인가?
인간과 사상-나는 누구인가?
  • 본교 강사 이재춘
  • 승인 2004.12.04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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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J. 가이더의 철학소설 『소피의 세계』의 주인공인 소피는 어느 날, 보낸 사람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은 낯선 편지 한 통을 받는다. 편지 봉투 안에 들어 있는 쪽지에는 “너는 누구니?”라는 물음표를 매달고 있는 한 줄의 글귀만이 적혀있다. 이 이상한 물음에 소피는 대뜸 “나는 소피 아문젠이지.”라고 답해보지만, 소피는 그 이상한 질문이 도대체 무엇을 묻는 것인지, 그리고 ‘도대체 소피는 누구지?’, 또 ‘왜 자신이 누군지를 내가 모를까?’라는 의문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이 소피처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나의 이름, 나의 주민등록번호, 나의 키, 나의 몸무게, 나의 취미 등을 열거하면 될까? 이것들이 나의 존재를 잘 드러내주는 것일까? 사실 우리 각자는 ‘나’라는 것에 아주 익숙하기 때문에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가 왜 존재하는지, 우리는 왜 죽는지, 우리는 왜 사는지, 우리는 왜 선하게 살아야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우리에게 이 모든 것들-나, 삶, 세계, 선 등-은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해 보이는 그 모든 것들에 “왜?”라는 물음표를 붙여본다면, 그 모든 것들의 ‘의미’를 우리가 손쉽게 거머쥘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이 어려운 일을 자청한다. 철학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어린 “왜?”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답’을 찾아가는 일종의 ‘사고 활동, 즉 이성의 활동’이다. 철학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처럼 철학책 안에 나열되어 있는 이론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리고 ‘철학을 한다’는 것은 유명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구경하거나 암송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무수한 철학이론들은 철학함의 과정으로부터 나온 결과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에 입문하는 대학의 교양 수업은 이론들의 나열이나 선생의 일방적인 강의로 구성되면 안 된다. 철학 수업은 우선, 우리가 나-타인-세계 속에 내던져진 ‘인간’이기에 물을 수밖에 없고 그 의미를 갈망하게 되는 철학적 질문들을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 스스로 그 던져진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사고의 힘 즉 비판적인 정신을 일깨워주어야 하며, 서로의 의견을 조정하여 합리적인 대답에 도달하기 위한 토론의 장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지금 <인간과 사상> 수업은 ‘열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켜도 되는가?’에 대하여 토론 중이다. 이 주제의 발표를 맡은 조원들이 강단 위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 어떤 학생은 희생시켜도 된다는 ‘이유’를, 다른 학생은 그런 희생은 윤리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대변하는 배우가 되어 있다. 그 연극의 대본은 현장감 있고, 배우들의 목소리는 살아있다. 오래된 철학적 주제는 학생들을 통해 늘 새 옷을 입게 되며, 학생들의 생각을 통해 나오는 의견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각을 반영한다.

 학기 초에 이 수업에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은 철학이라는 거대한 사상 앞에서 주눅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철학수업은 앞서 말했듯이,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문제들과 현재 우리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드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 것인 바람직한지?’ 등의 물음을 한 번쯤 마음에 품었던 학생이라면, 우리의 수업에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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