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묻어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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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인(의상디자인·1
  • 승인 2004.12.0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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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험생활

  다른 수험생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는 고등학교 때 자퇴를 했었다. 구속받는 학교생활이 싫었다. 대학교는 당연히 가야한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대학만을 위해 공부만 하기는 싫었다. 하지만 부모님께 혼자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억지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 후 지독한 짝사랑에 빠져 공부를 시작했다. 19살, 그러니까 내 나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미친 듯이 공부하고 있을 그때, 나는 미친 듯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었다. 내가 짝사랑하던 오빠와 같은 대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내가 19살, 내 짝사랑이 20살, 그 오빤 대학교 때문에 다른 지방으로 가야했고 일년 동안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 오빠가 가는 날 나는 혼자서 학원에서 마구 울어댔다. ‘같은 학교를 가야지’ 책상 앞에는 온통 이런 문구의 글들만 붙여놓고 그 학교의 배치표며, 심지어는 천장에다 형광별로 학교 이름을 붙어놓기도 했었다. 그렇게 내 짝사랑만을 위해 공부를 하던 중, 어느 날 그 오빠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 여자친구는 그 오빠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언니였다. 그날 또한 역시 학원에서 온종일 울었다. ‘내가 일년만 먼저 태어났더라면’하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같은 학교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앉아서 공부만 했었다. 물론 이것도 삼일을 못 버텼지만 말이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던 모의고사 시험을 보는데 전화가 왔다. 그 오빠였다. 시험시간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는 없었고 그날 시험은 치는 둥 마는 둥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려왔다고 잠깐 보자는 전화였는데, 그 전화를 못 받은 나는 결국 그 오빠를 볼 수 없었고 또 그렇게 그것 때문에 속이 상해서 또 하루 종일을 울었다. 어쨌든 그렇게 내 수험생 때의 일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오빠였고, 공부를 하는 것도 그 대학을 위해서였고,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오빠 생각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추억이 많이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부할 계기를 만들어 준 내 첫사랑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그 오빠와 같은 대학교에 갔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후회를 했을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지금의 과에 들와서 그걸로 너무 만족한다. 나중에 내 첫사랑 그 오빠를 만나게 되면 예쁘게, 정말로 예쁘게 옷을 하나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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