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가 말하는 백가지 이야기
기호가 말하는 백가지 이야기
  • 홍익대 광고홍보 교수 신항식
  • 승인 2005.05.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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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은 거짓문화를 비판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탄생의 목적에 충실함으로써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

 

기호학과 대중문화의 기호들 
 

기호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형수술은 얼굴을 가지고 자아를 기만하는 한국인의 슬픈 단면을 드러낸다. 육체는 웃음이나 의복과는 달리, 자아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청소하는 붉은 악마는 축제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척하지만 청소를 통해 축제의 뒤풀이를 보수적으로 마감한다. 사회를 향해 "나 착한 아이거든요"라고 말하고 있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서 전화기를 흉내내는 한국인은 전통적 실생활을 파괴한다. 한국의 흉내는 주먹을 쥐어 귀에다 가져다 대는 것이다. 전자가 서양의 분석적(사물존중) 문화라면 한국문화는 상상(상호작용)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하시다"의 존칭표현을 써대는 이들은 무례하다. 예의는 존칭이 아니라 존칭이 쓰이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호학자는 문화적 사실에 대하여 대충 위와 같이 말하고 마는가.
 

아니다. 기호학자는 과학적 수순을 따른다. 자동차 로고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 여기 현대자동차 로고가 있다. 마크를 눈으로 살펴보자. 텅 빈 타원 내부에 사선의 H형상이 두껍게 들어가 있다.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들 인정하는 사실이다. 즉, 텅빔, 내부, 타원, 형상, 사선, 두꺼운 성격이 모두 한 데 모여 마크를 구성한 것이다. 이것을 기호적 텍스트라고 한다. 이제 조금 더 생각을 갖추어 다음 사실을 확인하자. 텅빔이란 차여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부는 외부가 아니다. 타원은 네모, 세모, 정원, 선, 점이 아니다. H의 형상은 A 도 B도 아니다. 사선은 수직도 수평도 아니다. 두꺼움은 얇지 않은 것이다. 
 이제 이 대립적 사실들을 통해 인지적인 해석을 해보자. 텅빔, 내부, 타원, 형상, 사선, 두꺼운 성격에 관해서이다. 텅 비었다는 것은 형상이외에 아무 것도 차여 있지 않는 "독자적"인 상태다. 내부라는 것은 이 형상이 외부의 타원에 의하여 "보호"되거나 "둘러싸여"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타원은 원의 일종이다. 원은 각이 진 도형보다 더 운동적이다. 게다가 타원은 상하좌우가 대칭되지 않는 비대칭의 원이며 비대칭은 대칭보다 "운동적"이다. 사선도 그렇다. 수평이나 수직보다 "운동적"이다. 각도가 비대칭이기 때문이다. 사선의 형상이 두껍다는 것은 둔한 움직임을 뜻한다. 종합하면 "H 형상은 운동하는 타원에 의하여 보호 당하며 텅 빈 공간속에서 홀로 둔중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기까지가 사실에 근거한 현대자동차의 모습이다.
 

이제 약간의 심리적인 해석을 해보자. H 형상은 텅 빈 선에 의하여 보호당한다. 텅 빈 선이기 때문에 이는 보호라기보다 구획되는 것일 뿐이다. 표시할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듯이, 남들로 하여금 "나 좀 보아달라"는 욕구를 드러낸다. H 형상은 뚱뚱하며 사선으로 운동하고 있다. 그런데 움직이는 타원 속에서 운동하기 때문에 운동적 인지의 "차별성도 없다". 차별성도 없이 둔하게 나 좀 보아달라고 하면 누가 보아주겠는가. 이제 문화적으로 해석하여 마크를 종합적으로 이해 해보자. 기업 현대자동차는 넓거나 크게 자신을 어필하면 좋은 것이라는 지극히 하류 문화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로부터 한국의 떼거지 문화 혹은 과시문화를 읽어 낼 수 있다.
 

앞서 기술한 전 과정은 기호학적 지성이 현대자동차의 로고마크를 어떻게 이해하는 가를 보여준다. 기호학의 세부해석은 심리적일 수도 역사적일 수도 사회학적일 수도 있지만 그 결론은 항상 문화의 무의식적 층위에서 발견된다.
 

기호학적 지성은 눈앞을 스치는 자그마한 기호에도 무의식적 문화의 층위가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기호학은 질이 떨어져 보이지만 문화적으로 힘이 쎈 대중문화나 실생활의 기호를 선호하고 이를 분석한다. 대중문화가 힘이 쎄다고 해서 기호학을 대중문화의 조작에 거꾸로 이용하려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기호학자가 아니라 기호조작자이다. 기호학의 활용은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기호학은 거짓문화를 비판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탄생의 목적에 충실함으로써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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