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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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하나 기자
  • 승인 2005.05.28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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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해도 ‘먹고 대학생’이라는 말이 흔했다. 대학생들이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주로 놀고, 먹는다는 데에서 생긴 말이다. 하지만 어느새 이는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요즘은 그런 말들이 무색할 정도로 대학가는 학점 따기에 열이 오른 학생들로 뜨겁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본지에서 지난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본교 학우 2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약 57%의 학우가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학점관리를 꼽은 것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요즘 대학생들에게서는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과제물이 많은 과목을 회피하고, 쉽게 가르치고 학점을 잘 주는 과목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약 24%의 학생들이 학점 잘 주는 교수의 수업을 선호한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나아가 전공필수 과목을 수강하기보다 교양과목을 수강해 좋은 학점을 받으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게다가 상대평가의 영향도 더해져 대학가에는 이제 학점 인플레이션이 만연하게 되었다.

때문에 요즘은 1학년 때부터 학점관리에 들어가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평상시에는 자리 잡기 쉬운 도서관이 시험기간만 되면 빈자리를 찾기 힘들어지고, 시험기간이 닥치면 시험문제 힌트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이처럼 대학가에 극심한 학점경쟁 바람이 부는 현상은 학생들이 지식을 쌓기 위한 공부가 아닌 학점을 따기 위한 공부에 매진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학점 쟁탈전은 우정도 필요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학점경쟁의 폐해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재작년에는 어느 대학의 한 학생이 재수강한 성적이 친구보다 좋지 않게 나오자 강사에게 친구와 성적을 바꿔달라고 요구한 사건이 있어 큰 논란이 됐다. 이것이 바로 속칭 ‘학점 스와핑’이라는 것이다. 한편 ‘커닝’은 이미 대학가에서 보편화 된지 오래다. 이는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차있는 대학들의 책상이나 벽, 그리고 시험기간이면 어김없이 자유게시판에 올라오는 ‘컨닝하지 마라’는 글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요즘 대학생들의 커닝은 핸드폰이나 PDA를 이용하는 등 그 방법에 있어 더욱 지능화되고, 첨단화 되고 있어 예전의 단순한 베끼기를 넘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처럼 부정행위가 판을 치는 대학. 그야말로 요즘 대학생들은 학점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것을 그대로 증명 해준다.

이처럼 부정행위도 불사하고 신입생 때부터 학생들이 강도 높은 학점관리에 돌입하는 세태가 정착됨에 따라 대학들의 학사행정도 움직이고 있다. 학점포기제나 재수강제도를 대부분의 학생들이 단순히 학점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학점포기제나 재수강에 학점제한이나 성적제한 등 좀 더 구체적인 규정을 정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대학도 생기고 있다.

성균관대는 올해부터 재수강제도 폐지를 결정했다. 성균관대 교무과 담당자는 “1년 반 동안 교육과정 개정 심의위원회에서 연구하는 등 절차를 밟아 재수강 폐지를 결정했다”며 “일부학생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단체적인 반발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 올해부터 학점포기제를 없애는 대신 중간고사 직후 수강중인 과목을 2과목까지 철회할 수 있는 수강철회제도를 새롭게 시행하기도 했다. 부산대의 경우에는 수업일수의 1/3이 지나면 학점 제한 없이 학점을 포기할 수 있는 학점포기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재수강의 경우 성적이 D+이하일 때만 가능하다.

본교 정원호 정보공학대학장은 “재수강 제도로 인해 저학년과 고학년이 수업을 같이 들을 수 있어 불공평하고, 학생들이 재수강을 단순히 학점 올리려는 편법으로 악용한다”며 재수강 폐지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재수강으로 인해 같은 과목을 재수강하는 학생들이 계속 늘고, 그 중 상당수 학생들이 A나 B 등 좋은 학점을 받고도 재수강을 신청해 과목당 학생정원이 늘어나고 수업의 질이 떨어지면서 교과과정이 부실해지는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우리대학 학생들도 재수강 폐지에 대해 약 78%의 학생들이 반대에 표를 던졌다. 그 이유로 약 52%의 학생들이 재수강 폐지는 ‘수업을 들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라고 답했고, 약 40%는 ‘학점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현정(사회?4) 부총학생회장 역시 “학생들의 선택권 문제가 있어 쉽게 폐지할 수 없다”라며 재수강 폐지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했다. 덧붙여 “하지만 학생들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수업만 듣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은 이처럼 학점에 매달려야 하는가. 경기침체로 취업난이 장기화되고 학부제 시행 등으로 학점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학생들은 경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취업난 속에서 안전한 직업으로 꼽히는 교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교직이수를 위한 학점관리를 하는 학생들도 상당수이다. 기업에서도 신입사원을 뽑을 때 무슨 전공과목을 들었느냐보다는 전반적인 대학성적 평점을 보기 때문에  더욱 학점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취업을 위한 학점경쟁에 대해 취업정보사이트 인쿠르트 홍보팀 김태관씨는 “회사마다 3.0에서 3.5까지 학점제한이 있긴 하지만 취업과 학점이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때문에 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학점에 너무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어느새 대학이 지식의 전달이나 창조하는 장이라는 것은 아득한 옛말이 되어버렸다. 속칭 학점벌레들만 가득한 대학이 바로 우리나라 대학의 현주소이다. 대학에 오기까지 낭만과 꿈을 가지고 기대에 부풀었던 우리의 모습을 회상해 볼 때,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학이 점점 취업을 위한 학점 제조기로 전락되어가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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