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혐오

2019-11-06     -

  마사 누스바움은 저서 <혐오와 수치심>에서 “혐오란 오염을 염려하는 다수가 행하는 일종의 폭력”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사회에서 혐오 현상은 이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갈등이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갈등 현상은 사회 구성체에 부정적 영향도 주지만 이를 봉합하고 해결하는 결과를 통해 긍정적 영향도 미친다. 사회적 분열에 대한 봉합을 대통합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사회는 다양한 갈등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주체 간에 갈등이 발생한다. 최근 한국사회 역시 다양한 집단, 계층 간의 갈등이 드러나는 형국이다. 빈부 간의 갈등을 포함해 성별 갈등, 최근의 검찰개혁을 바라보는 상반된 세력 간의 갈등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다양한 갈등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이를 해소하고 통합하기보다 서로 반목하는 수준에서 고착화하는 데 위험이 있다. 한국사회 갈등은 이에 더해 혐오라는 현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각자의 진영에서 상대 집단을 비하하는 표현이 낯설지 않은 것이 이를 반증한다.

  갈등이 혐오로 전개될 때 부정적 효과는 커진다. 섞이기 싫어하는 극단적 상태가 혐오에 나타나며,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은 해충을 대하는 태도를 방불케 한다. 극단이라는 단어에 적합한 대립이 나타나며, 인신공격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폭력을 수반한다. 언젠가부터 한국사회는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혐오로 이전시키는 데 익숙해진 느낌이다. 정말 우려할 일은 여기부터인데 혐오가 만연한 사회로 가면서 개인이 받는 영향이 점차 커진다는 점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개인은 자신이 처한 경제적·계층적 성격에 따라 상대방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많은 경우 진영논리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경향성에 따라 상대방을 평가하고 혐오를 드러낸다. 이 점에서 개인 수준의 혐오가 만연한 사회는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마주 보며 싸우는 형국과 유사하다.

  최근에 불거진 사회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혐오가 만연한 사회로의 변질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경우 사회적 갈등은 정부나 정치권의 중재로 이해관계자가 마주 앉는 것에서 출발한다. 경청과 대화 이외에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점에 유의해 신속한 갈등관리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모여서 촛불을 들고 대립하는 것이 때로 의미가 있지만 현재처럼 장기적 소모전으로 갈 가능성은 차단해야 한다. 갈등을 방치하는 것은 곧 이를 조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현재 갈등을 해결할 방책을 강구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