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회 학술문예상 시 심사평

2021-12-06     이명찬(국어국문) 교수

  제발, 오해하지 맙시다. 시적인 어휘나 표현, 문장은 결단코 따로 있지 않다. 시적인 것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오해부터 버리고 시작(詩作)을 시작합시다. 심지어 적당히 끊으면 행이 되고, 행 몇 개를 묶어 놓으면 연이 된다는 어정쩡한 지식조차도 버려야 한다. 토르소, 활주로, 허공 등등 써넣기만 해도 시가 됨직한 소재나 상황들이 따로 있다는 생각도 허망하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한자어, 관념어들이 시에는 유효하리라는 발상도 유치하다. △영겁 △태양 △혈액 △심장 △맥박 △숭배 △순간 △자태 △고귀 △정열 △뇌리 등등은 총 17편의 응모작 여기저기서 무작위로 뽑아본 한자어, 관념어들의 예시다. 어떠한가? 손가락이 오그라들지 않는가? 이보다 한술 더 뜨는 것으로, ‘곱고, 예쁘고, 보드랍고, 촉촉하고, 순정해 보이는 시어’들을 그러모으는 편집벽이 있다. 이런 것들이 시를 시답지 않게 만드는 오해의 구체적 사례들이다.

  시는 이런 것들을 단순히 그러모으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이런 게 시다운 거야’라는 시중의 생각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휘 △표현 △문장 △행 △연 △소재 △상황들이라면 이미 판에 박혀 죽어 버린, 시답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시는, 더구나 좋은 시는, 저런 모든 것들을 ‘새롭게 말하는 자리’에서 생겨난다. 그러니 시를 생각주머니의 맨 꼭대기, 즉 염두(念頭)에 두고 있는 여러분들이라면 시다운 말들을 모으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떤 새로운 자리에 남들이 말하지 않은 방식으로 놓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나는 시를 쓰겠다’라는 전제는 우선 필요하다. 제목을 가진 좀 짧은 △내 생의 한 단면 △내 감정의 한순간 △내가 돌아다니다 발견한 매우 새롭고 흥미로운 상황 하나 △인생에 대한 완전 새로운 해석 혹은 표현 하나를 완결된 글로 써보겠다는 마음은 우선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다음에는 차라리 시(詩)답지 않은 말하기로 그것을 표현하려 애써보기를 권한다. 밑도 끝도 없는 산문으로, 해괴한 말들의 결합으로(그러나 그 속에는 남들에게 통할 만한 나름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 낯선 감정의 세목들로 글을 채워보길 바란다.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 같았다’처럼 쉽게 엮은 듯하지만, 생의 정곡을 찌르는 힘든 말들의 결합을 찾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레커차 운전수들처럼 여러분의 이십 대 전부를 들쑤시고 다녀야 한다. 그러다 혹 두어 줄 여러분의 ‘연탄재’를 만난다면 얼마나 복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