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내야 하는 이름, 여성 독립운동가

주체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의 기록·업적 발굴할 필요 있어

2024-09-01     덕성여대신문사

우리가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대학 설립자 차미리사와 같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관순 이외에 널리 알려진 여성 독립운동가는 많지 않다. 이에 업적에 비해 인지도가 높지 않거나 인정받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보고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여성 독립운동가를 향한
  부족한 관심과 연구

  공훈전자사료관이 제시한 ‘연도별 독립유공자 포상 현황’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 1만 8,139명 중 여성은 663명으로 전체 독립유공자의 약 3.66%에 그친다. 그러나 여성 독립운동가 수를 통계에 나타난 숫자로만 섣부르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교육부가 밝힌 ‘2018년 교과서 기준 독립운동가수록현황’에 따르면 중·고교 검정교과서에 나타난 독립운동가와 근현대사 인물 208명 중 여성 독립운동가는 16명뿐이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수록된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이 유일하며 여성 독립운동가가 아예 실리지 않은 중학교 역사 교과서도 존재한다. 이처럼 역사 속 여성 독립운동가가 흔하지 않은 이유는 서훈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수가 적고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해 국내 여성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전공자는 극히 적으며 발굴된 여성 독립운동가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연도별

  여성 독립운동가는
  왜 주목받지 못하나

  우리나라는 상훈제도의 일종으로 독립에 기여한 자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건국훈장은 5개의 등급으로 나뉘며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의 등급은 각각 △유관순 1급 △권기옥 3급 △차미리사 5급이다. 앞서 말했듯 서훈받은 전체 독립운동가 중 여성 독립운동가는 약 3%로 극히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는 서훈 지급 기준에서 과거 성역할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여성은 돌봄과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사회 구조로 인해 적극적인 독립운동이 어려웠다. 반면 남성의 경우 가시적인 독립운동을 도맡은 것으로 기록됐기에 여성에 비해 공로를 인정받기쉽다. 큰 규모의 독립운동 이전에 다양한 역할을 가진 여성의 지원과 노력이 존재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대학 사학전공 최주희 교수(이하 최 교수)는 “남성의 경우 △학생운동 △의열투쟁 △독립운동 △단체활동과 같은 눈에 띄는 활동에 참여해 독립운동 참여 사실을 입증하기가 여성에 비해 쉽다”며 “여성이 가족 내에서 독립운동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서훈 지급 시 공식적인 기록만 인정하는 점도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에 걸림돌이 됐다. 1900년대 초반은 기록이 많지 않았던 시기였을 뿐 아니라 남성이 주였던 유교 사상으로 인해 여성의 활동을 공식 문서에 남기기 어려웠다. 이에 여성이 주체적인 독립운동을 했을지라도 기록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 교수는 “낮은 사회적 지위로 인한 활동 범위 제약 등 전근대 여성이 기록될 만한 독립운동을 하기엔 여러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공식 문서뿐만 아니라 △일기 △편지 △책등 다양한 문서를 건국훈장 기준으로 정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여성 독립운동가를 대할 때 업적보다 지위를 우선시하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 직접 총을 들고 싸웠던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의 묘비에는 독립운동가 박차정이 아닌 ‘약산 김원봉 장군의 처’라고 기록돼 있다. 진정으로 독립운동가를 기린다면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독립운동가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

유관순에게

  우리가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들

  많은 여성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나 여러 이유로 기록에서 누락됐다. 먼저 이화림(1905~1999)은 김구가 창단한 한인애국단에서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1919년, 그는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3·1운동에 참여해 각종독립운동가를 도왔다. 이봉창의 바지에 비밀 주머니를 만들어 수류탄을 숨길 수 있도록 하거나 부부로 위장해 윤봉길이 도시락 폭탄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독립운동이 개인의 희생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고 사회주의를 주장해 김구와 사상 대치로 결별했다. 그 후 중국 인민군으로 활동한 이화림은 업적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됐다.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헌신한 인물도 있다. 안성녀(1881~1954)는 독립군과 함께 생활하며 중요한 문서를 보관·전달하거나 독립군의 숙식을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하얼빈에서 양복점을 차려 얻은 수익으로 독립 군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그는 안중근의 여동생으로서 안중근이 사형당하기 전 면회를 갔다가 일본 경찰에게는 고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공식 자료가 드물어 안성녀는 아직까지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곳곳에서 조력자 역할로 해방을 도운 한편 일제에 직접 대항하며 적극적으로 나선 인물도 분명 있다. 학생부터 주부, 기생, 간호사 등 다양한 직업의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만세운동과 시위를 주도했다. 대표적인 독립운동 중 하나인 3·1운동에서도 △이화학당 △정신여학교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모인 여성들은 대한독립여자선언서를 발표하고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이외 박차정 열사와 같이 수차례 옥고를 치르며 부상에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도 있었다.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기 위해서

  2018년 정부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고려한 ‘제4차 국가보훈발전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자세한 내용으로는 △국가유공자 예우정책 △공정한 보훈보상체계 △보훈의료·복지 △나라 정신 기억·계승 △안보 현장에서 헌신한 인물 지원으로 5대 분야와 24개의 중점과제가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독립투쟁이 문서로 기록될 기회가 적었던 것을 참작해 기준을 꾸준히 완화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 개선방안’에 따르면 만세운동과 같은 독립운동 참여로 교육기관 등에서 징계 받은 내역이 있더라도 서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 미비했던 여성 독립 운동가에 대한 자료 기준을 보완하기 위해 회고록과 수기같은 직·간접 자료도 독립운동 증거로 인정하고 있다.

  2019년 정부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유관순 열사에게 최고 등급 건국훈장인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1962년 3등급으로 건국공로 단장을 수여한 이후의 등급 상승이다. 유관순 열사의 공로가 변하지 않았음에도 등급을 상승시킨 이유는 대한민국의 성인지 감수성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성차별에 대한 시민 인식이 상승함과 동시에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쏠려 유관순 열사의 공로가 과소 평가되고 있음을 인지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가 많기에 현재에 안주해선 안 된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224명 중 단 3명만이 여성이다. 또한 제주도보훈청에 따르면 수형인민부나 판결문 등을 증거로 한 제주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는 약 500명에 달하나 실제로 인정받은 인물은 179명에 그쳤다. 제주해 녀항일운동을 이끈 5명의 해녀 중 일부 또한 증거가 부족해 9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추서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2023년에 시작해 2027년까지 실행될 5차 국가보훈발전 기본계획에 계속해서 주목해야 한다.

  이렇듯 성장하는 의식에 맞춰 발굴하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를 찾아내고 시대별 성차를 반영해 서훈 기준을 보완해야 한다. 최 교수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은 개인보다 친족 단위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며 “여성은 가족 내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등 많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가족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00년대 이후에서야 독립유공자 서훈이 이뤄졌기 때문에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발굴 또한 꾸준히 진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나라를 위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은 모두 독립운동인만큼 숨겨진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기 위한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