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싱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만들다

2024-10-07     덕성여대신문사

  우리가 흔히 듣는 음악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선 레코딩과 믹싱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내 최초 여성 믹싱 엔지니어인 그는 가수 윤상의 5집 앨범으로 입봉해 △윤상 △이적 △선우정아 △리쌍 △혁오 등 유명한 가수들의 음반을 작업하며 경력을 쌓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없이 고뇌하며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만드는 곽은정 믹싱 엔지니어를 만나 봤다.

  Q. 믹싱 엔지니어가 하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광고 △영화 △음악 등 매체에 들어가는 소리를 작업하는 사람을 음향 엔지니어라고 불러요. 그 중에서도 믹싱 엔지니어는 음악을 주로 작업하죠. 곡 하나를 작업할 때도 악기, 노래소리 등 굉장히 다양한 요소가 필요해요. 믹싱 엔지니어는 실제 연주를 녹음하거나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만든 작업물들을 잘 조합해 하나의 음악으로 만드는 일을 해요. 우선 레코딩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해 녹음하는 작업을 말해요. 이후 작업물에 따라 중요한 부분은 강조하기도 하고, 추구하는 방향과 다른 부분은 음량을 줄이는 등 세밀한 정리 과정을 거쳐요. 이러한 정리 과정은 믹싱이라고 해요.

  음악 또한 예술 분야 중 하나잖아요. 믹싱 엔지니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술을 통해 감성을 표현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다양한 음향 엔지니어 중 믹싱 엔지니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큰 규모의 광고 녹음실 소속으로 잠깐 있었어요. 초반에는 광고 음향을 작업하며 연예인들도 만나볼 수 있어서 재밌었지만 제 작품이 남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서 흥미가 떨어지더라고요. 일이 끝나면 작업한 광고가 TV나 라디오 같은 매체에 나오는데, 광고는 한시적이라 금세 다른 광고로 교체돼요. 제가 만들어낸 음향이 큰 수익을 내진 못해도 꾸준히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그때 믹싱 엔지니어가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믹싱 엔지니어에게 필요한 능력이나 자질이 있을까요?

  믹싱 엔지니어라는 직업의 체계나 일하는 방식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기에 어느 한 가지가 꼭 필요하다고 짚어 말할 수는 없어요. 세상에 쉬운 일이라는 건 없다고 하지만 이 직업은 특히 드물거든요. 그래서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실력을 인정받고 더 깊은 경험을 쌓기가 쉽지 않아요. 따라서 처음 일을 접할 때는 참을성과 어느 한 가지를 진득하게 할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해요. 작업 특성상 가시적인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작업물을 들어보며 여러 소리를 조정해야 하기에 다른 일에 비해 시간도 더 필요하죠. 그런 시간을 이겨내기 위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믹싱 엔지니어로서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요?

  ‘좋은 음악’이라는 건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하며 누구나 그 뜻에 공감할 수 있게 배려를 많이 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듣는 노래가 아닐지라도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음악 있잖아요. 그런 음악을 대중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꾸준히 회자되며 기억에 오래 남아요. 특히 저는 10년 후에 다시 들었을 때 창피해서 못 듣는 음악은 만들고 싶지 않아요. 급하게 완성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면 부끄러워서 나중에 못 듣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진실된 음악은 나중에 들으면 촌스럽긴 해도 옛날 일기를 보는 기분이 드는 음악이에요.

 

  Q.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나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는 일명 ‘열정페이’로 제대로 된 수익을 정산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매일 작업하며 밤을 새는 등 일의 강도는 다른 직종보다 더 심하거나 비슷했지만 수익은 훨씬 적었죠. 그래서 오랫동안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참 많았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제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물론 육체적으론 굉장히 힘들었지만 당장 일이 재밌었고 수익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었어요. 특별한 목표나 비전 없이 일단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일했던 기억이 나요.

 

  Q. 작업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무엇인가요?

  저는 가수와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해요. 저는 주로 싱어송라이터분들과 작업을 많이 하는데,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가수를 만나서 이 음악을 만들게 된 이유를 꼭 물어봐요. 사소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게 음악의 시작이에요. 너무 우울하니 신나는 음악으로 기분 전환을 해보자는 취지일 수도 있고 음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있을 수도 있는 거죠. 그 이유를 듣고 가수의 성향이나 성격을 파악하면 믹싱 작업을 할 때 훨씬 도움이 돼요. 음악의 방향성을 잡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죠. 그래서 그만큼 가수와의 친밀감도 중요해요. 가수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라는 곡도 작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가사를 보면서 같이 의견을 많이 나눴어요. 제가 작업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건 교감과 소통이기 때문이에요.

 

  Q. 일하면서 뿌듯했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사실 뿌듯했던 순간은 굉장히 많아요. 하지만 음반 판매량이 좋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해서 뿌듯한 적은 별로 없었어요. 저는 음반을 만드는 과정에서 좋았던 기억이 더 많아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수와 합이 잘 맞는 경우예요.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서로 같은 것을 느끼고 이해해서 음악을 구현하는 과정 자체가 정말 즐거워요. 저에게 있어서 더 중요한 건 결과보다는 과정이에요.

 

  Q. 개인 스튜디오를 차리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거창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이전에 녹음실 소속으로 일할 때도, 프리랜서로 활동할 당시에도 나름 만족하면서 살았어요. 특정 녹음실 소속으로 일할 때는 제가 녹음실에 일을 가져가면 녹음실 입장에서는 수익을 가져오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렇다 보니 서로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혼자 무언가를 해보거나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저는 심사숙고해서 계획을 세우는 성향이 아니에요. 개인 스튜디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 바로 실행에 옮겼던 기억이 나요.

 

  Q. 여성 엔지니어로서 느끼는 고충이 있나요?

  아무래도 여성이 많지 않은 직업이다 보니 여자 후배가 너무 없어요. 선배도 없었는데 후배도 없는 거죠. 어느 날은 답답했던 나머지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왜 이렇게 여자 후배가 안 나오는지 얘기해본 적이 있어요. 결론은 너무 겸손하기 때문에 오히려 믿음이 안 간다는 거예요.

  여자들은 부끄러워할 만한 실력이 아님에도 기회가 주어지면 주저하거나 본인을 낮춰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에 남자들은 무작정 해보겠다고 말하는 걸 자주 봐왔어요. 일을 제안하는 입장에서는 일단 해보겠다는 사람을 더 신뢰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실질적으로는 여자가 일을 더 잘해도 자신 있어보이는 남자들한테 기회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의 계획이나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요?

  앞서 말했듯 저는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성향이고 일을 할 때 계획을 세워본 적도 없어요. 개인적으로 한 가지를 오래 하기 위해선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보통 특정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면 다음 목표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허무해지거나 다음 목표를 세우는 데 급급해 정신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앞으로도 특별한 계획이 없어요. 그때그때 작업에 집중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Q. 믹싱 엔지니어를 꿈꾸는 덕성여대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옛날에는 엔지니어로 성공하려면 반드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대형 녹음실에 어시스트로 입사해야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좋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방향이 옛날처럼 정해져 있지 않아요. CD로 음악을 듣던 시절에는 음반에 거의 10곡 이상이 수록되다 보니 어시스트들에게 한 곡 정도는 믹스를 맡겼어요. 하지만 요새는 음반 하나에 한 곡만 수록해 발매하는 추세다 보니 곡 하나하나가 중요해서 어시스트가 작업해 볼 기회가 흔치 않아요. 따라서 어딘가 소속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제대로 된 작업을 해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겸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기회는 생각보다 잘 오지 않아요. 누가 기회를 주면 실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일단 해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중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