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대학혁신지원산업
대학을 뒤흔드는 정부, 재정지원의 실효성부터 점검해야 할 시점
2009년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조건부 재정지원을 통해 대학의 등록금 동결을 강제했다. 그러나 최근 심해진 대학 재정난에 사립대학을 중점으로 등록금 인상이 이뤄졌다. 등록금 동결 기조가 흔들리는 현시점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대학혁신지원사업(이하 혁신지원사업)’은 재정난 해결의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혁신지원사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해 본다.
정부의 재정지원은
대학 재정난의 돌파구?
지난해 12월, 한국교육협의회는 전국 4년제 국공립대학 및 사립대학 140개교의 총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75%에 해당하는 105개교 총장이 향후 5년간 대학 재정이 악화할 전망이라고 답했다. 각 총장이 재정 악화를 예상한 이유는 △물가 상승으로 인한 관리운영비 증가 △학생 모집 및 유지의 어려움 △교육을 위한 재정 투자 증가 등이었다. 이렇듯 물가 상승과 학령인구 감소가 맞물리며 대학은 운영비를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데 어려움을 빚었다. 결국 대학의 이목은 자연스럽게 정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이하 재정지원사업)’으로 쏠렸다.
재정지원사업은 교육부의 정책적인 목적에 따라 일정기간 동안 사업을 진행한 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정책이다. 정부의 고등교육기관 재정지원은 5.31 교육개혁 이후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러나 명확하지 않은 지원 기준 등 정책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여론이 빗발쳤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지원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공식 매뉴얼을 발표했다. 대학구조개혁평가에 따라 대학에 등급을 배분한 뒤 재정지원사업을 실시해 예산을 지급하는 주기를 반복하며 본격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재정지원사업은 문재인 정부 주도하에 현행 혁신지원사업으로 통합 개편됐다. 세분화된 기존 재정지원사업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다. 이에 따라 △자율역량 강화 △대학 특성화 △산학 연계 교육 활성화 △인문 역량 △여성 공학 인재로 나눠져있던 5개의 사업을 일반재정지원으로 통합해 지원한다.
대학을 단순 등급만으로 나누던 대학구조개혁평가 또한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이하 대학역량평가)로 바뀌었다. 대학역량평가는 대학을 △자율개선 △역량강화 △재정지원제한 △진단 제외 대학으로 구성했다. 개편 후에는 기존의 문제점을 고려해 정원 감축 대상이 되는 대학의 수를 줄이고 지원 대상을 늘렸다.
우리대학의
혁신지원사업 역사
2018년, 우리대학은 2주기 대학역량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 평가에서 탈락한 후 역량강화대학 중 가장 낮은 C등급으로 지정됐다. 역량강화대학으로 분류될 경우 1주기 혁신지원사업에서 제한을 받는다. 이에 본사는 지난 710호에서 저조한 실적에 대한 책임으로 사임서를 제출한 총장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이후 3주기 대학역량평가 평가 제고를 위해 우리대학의 학사 구조 개편이 이어진다. 우리대학은 혁신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되는 것을 목표로 DS-혁신사업단(이하 혁신사업단)을 신설한다.
혁신사업단은 교육부의 방침인 ‘4차 산업혁명 대비 및 대학 정체성 개발’을 중점으로 개정안을 구축했다. 혁신사업단은 △단과대학 재분류 △전면 자율전공제 △비교과 프로그램 등을 실시한 뒤 2021년 5월 자체진단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결과 우리대학의 3주기 대학역량평가는 일반재정지원대학(이하 일반지원대학)으로 분류됐다. 일반지원대학은 이전 주기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자율개선대학과 유사하다. 이에 우리대학 또한 혁신지원사업을 비롯한 재정지원 제한이 해제됐다. 2024년, 2주기 혁신지원사업 대상이 된 우리대학은 교육혁신 성과 부문에서 최우수 등급인 S등급을 부여받았다. 2주기 대학역량평가에서 뒤처진 결과를 만회하고자 개혁을 추진한 결실이다.
우리대학은 지난해 혁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했다. 수도권 최초로 단과대학별 자유전공제를 시행한 후 무전공제를 도입한 우리대학의 행보는 차별화된 교육혁신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빠른 혁신의 이면에는 불안정한 학내 상황이 두드러진다. 우리대학은 새로운 학사 구조에 맞춰 제한된 입학 정원을 재배분하기 위해 기존 단과대학의 정원을 차출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학본부는 학내 구성원과 충분한 논의를 진행하지 못해 결국 갈등을 빚었다.
대학 평화를 흐리는
혁신지원사업의 그림자
우리대학과 같이 재정난을 겪는 고등교육기관은 혁신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되기 위해 급격히 교육부의 비전을 좇았다. 교육부는 2023년 3월, ‘2023년 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기본계획은 △전공 구분 없는 모집 △지역사회 수요를 고려한 전공 구조 개편 △실질적인 학생의 전공 선택권 보장 △전공에 국한하지 않는 융합교육 운영을 주요한 평가지표로 삼았다. 기존에 수요가 저조했던 전공을 폐지하고 무전공을 확대함으로써 실질적인 전공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각 대학은 약 1년 후인 지난해 4월까지 한국대학교육협회에 수정계획서를 제출해야 했다.
우리대학을 비롯해 단기간에 성과를 내보여야 했던 각 대학은 학내구성원과 충분한 논의를 진행할 여력이 부족했다. 2023년, 우리대학은 학칙개정안을 발표하며 독어독문·불어불문학전공(이하 독문·불문) 신입생 미배정을 결정했다. 이에 2025학년도 독문·불문 신입생 미배정이 확정되기까지 학칙개정안 반대 시위와 학생설명회가 잇따랐다.
타대학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2024년 4월, 건국대학교(이하 건국대) 재학생은 자유전공학부 신설 반대운동에 나섰다. 건국대 총학생회는 “자유전공학부 신설 과정에서 기존 학과 정원을 차출하고 일부 학과를 통폐합하는 학사 구조 개편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대학가대학가는 학사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대학본부와 이를 반대하는 학내 구성원 간 갈등으로 고조됐다. 2주기 혁신지원사업을 진행했던 3년간 유사한 문제를 겪은 대학은 △인제대 △동덕여대 △한국외대 △인하대 등이 있다.
한편, 대학역량평가의 최하등급인 재정지원제한대학의 평가 기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정부의 재정지원제한대학 평가 지표는 교원 확보율, 신입생 충원율과 함께 졸업생 취업률을 포함한다. 이에 교육기관인 대학의 본질을 흐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취업률을 대학 평가 지표에 포함하면 대학을 기업의 하위기관으로 취급하는 사회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지속가능한 교육 위해
본질부터 점검해야
혁신지원사업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점은 지원 대상을 선별하는 기준인 대학역량평가다. 대학역량평가는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상대평가로 진행한다. 이에 한국교육개발원의 문보은 개발원은 현안 보고서를 통해 “대학대정지원사업 개편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대학에 일률적인 기준 적용이기 때문에 사업을 시행한 각 대학의 성과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교육부가 제시한 방향에 따라 모든 대학이 같은 형태로 변화하며 대학과 학생의 자율성을 보전한다는 본래 목적이 훼손되고 있다. 더해 혁신지원사업은 상대평가제도로 대학 간 경쟁을 부추긴다. 교육부가 무전공제도 확대 지침을 발표했을 때 각 대학은 타대학에 비해 더 높은 입학정원비율을 차출해 부전공에 분배해야 한다는 기조로 구조조정을 이어갔다.
또한 혁신지원사업의 주기별 사업 시간이 길지 않아 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해 개최된 ‘일반대-전문대 혁신지원사업 정책포럼’은 현 혁신지원사업이 단기적 성과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 대학 내 혼란을 초래한다는 주제를 발제했다. 이에 사업주기를 기존 3년에서 5년 이상으로 확대해 대학이 중장기적 발전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대학이 교육부의 혁신지원사업에 의존하는 상황부터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할 경우 정부는 국가장학금 지원을 제한한다. 등록금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는 대학은 정부의 제한으로 인해 사실상 등록금 인상이 불가능한 환경에 놓였다. 이에 재정난을 겪는 대학은 정부의 지원으로 예산을 충당하게 된다. 현시점,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 재정지원은 혁신지원사업이 주축이다. 이에 2022년 대학 총학생회 단체인 ‘전국대학생네트워크’는 기자회견을 통해 “고등교육 예산을 확충해 지원을 늘리고 대학과 학생의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이 자립할 수 있는 토대는 외부인의 비전 제시가 아니다. 진정한 대학혁신지원산업이라면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의 본질을 지키며 발전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찰과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의 한계를 넘어서 지속 가능한 교육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