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들의 정체성을 담은 언어, 수어

제도와 인식 개선으로 청각장애인 소외 해결해야

2025-04-07     덕성여대신문사

  수화언어(이하 수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청각장애인의 정체성과 농문화를 형성하는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수어의 중요성에 비해 사회적 인식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수어의 사용 현황과 보급 과정을 살펴보고, 수어가 가지는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급증하는 수어 
  콘텐츠수어란 무엇인가

  최근 국내 콘텐츠 산업에서 수어의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수어가 △뉴스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서 주요한 역할로 등장하며 이를 향한 대중의 관심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영화 <청설>이나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은 등장인물 사이 수어를 통해 소통하는 모습을 주로 보여준다.
  수어란 청각장애인이 △손과 손가락의 모양 △손바닥의 방향 △손의 위치 △손의 움직임을 이용해 의사를 전달하는 독립적인 언어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얼굴 표정 △입술 모양 △눈썹의 움직임 △몸의 방향 등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오랜 기간 동안 수어는 언어 사용자의 수가 적고 음성 언어와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언어로서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2000년 7월 1일 ‘한국 표준수화 규범 제정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한국수화언어(이하 한국수어) 표준화 사업을 추진했다. 이어 2005년에는 ‘한국수화사전’을, 2007년에서 2012년까지 ‘일상생활·전문 용어 수화집’ 등을 출간했다. 이후 2016년 2월, ‘한국수화언어법(이하 한국수어법)’이 제정됐다. 이 법안은 한국수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한국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언어로 인정한다. 또한 농인과 한국수어 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농문화와 관련된 정책 수립과 시행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수어를

 

  수화? 수어? 
  수어에 대한 오해와 한계

  정부와 기관의 여러 노력에도 수어에 대한 오해와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 ‘수화’와 ‘수어’는 서로 다른 의미다. 수화는 손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동작을 뜻한다. 반면 수어는 동작이 아닌 공식적인 언어로 인정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기존에는 수화라는 용어가 사용됐지만, 농인의 언어로서 차별받아 온 역사를 바로잡고자 수어가 공식 용어로 결정됐다.

수어

모든 농인이 동일한 수어를 사용한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잦다. 그러나 수어는 특정 문화와 깊이 연결돼 있어 국가별로 형태가 다르다. 같은 영어권 국가인 △미국 △영국 △호주는 각각 다른 수어를 사용하며 한국수어 또한 우리나라 문화에서 형성된 고유 언어다. 이에 전 세계 농인의 공통언어로 국제수어도 통용됐으나 이는 공식 행사에서만 사용될 정도로 보편화 되지 못했다. 국제수어를 통한 의사소통 또한 제한적이라 농인은 외국인과의 소통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 농인이 외국 농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나라별 수어를 따로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수어는 음성 언어인 한국어와 달리 시각 언어에 해당하는 독립적인 언어다. 하지만 대부분 한국수어가 한국어와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한국수어는 한국어의 단순한 변형이 아닌, 고유한 문법 체계를 가진 언어로 △어휘 △어순 △문법 등 의미와 구사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에 공주대학교 특수교육과 최상배 교수(이하 최 교수)는 “청인이 한국어와 한국수어의 차이를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어를 접할 기회나 수어를 통한 의사소통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며 “한국수어는 △음운론 △형태론 △구문론 △의미론 △화용론 측면에서 한국어와 표현방식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어와 영어는 모두 음성언어라는 공통점이라도 있지만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언어의 표현기법 측면에서 매우 다르다”고 전했다.

 

  수어 사용 환경 저하의 원인, 
  한국수화언어법

  한국수어법은 한국수어의 발전과 보전을 이유로 제정됐으나 그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라는 긴급 담화를 발표했지만 농인들을 위한 수어 통역은 제공되지 않았다. 같은 달 20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이하 김 의원)은 한국수어법 위반 사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 의원은 긴급현안질의를 통해 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어 통역이 필요한 농인에게 통역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는 한국수어법 16조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농인들이 소외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서울수어전문교육원 이미혜 교수(이하 이 교수)는 “한국수어법 조문에 농인의 언어권 보장을 위한 조항들이 있지만 이를 실행할 기관 및 공무원들의 이해와 인식이 부족하기에 농인의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한다”며 “계엄 선포 상황에서 정부 기관 관계자 중 단 한 명이라도 수어통역 제공 의무를 떠올렸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농인 사회 또한 이에 대해 지속적인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수어 활성화 및 교원 부족 또한 큰 문제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6월 3일, 17개 시·도 만 20세 이상 청각장애인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3년 한국수어 활용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한국수어 사용 실태 △한국수어에 대한 인식 △농문화 인식 정도 △농정체성 측정 등 크게 4가지 분야로 나눠 진행했다. 그중 한국수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대책으로 수어교원 양성과 수어 교육 활성화가 56%로 가장 높았다.
수어 통역사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국내 수어 통역사가 부족해 수어 통역이 필요한 공공기관이나 방송에서 이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청각장애인은 정보에 대한 접근과 사회 활동 참여에 제한을 받는다. 이에 최 교수는 “법률 제정만으로는 수어 사용 환경의 변화에 한계가 있다”며 “수어통역사나 수어교원 직무의 전문성 제고와 그에 상응한 직업 안정성 보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3년

 

  공적 언어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 인식 변화 필요해

  수어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한국수어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 먼저 수어 통역 의무화와 농인의 정보 접근성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마련이 중요하다.
수어 통역사 양성도 필요하다. 대학 차원에서는 수어 관련 전공과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수어 능력을 우대하는 정책을 도입해 수어가 일상 내 의사소통 도구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경국립대학교는 한국수어교육전공을 도입해 학생들이 한국수어교원 및 현장 수어통역 기초 역량을 갖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교수는 “공교육 체계 내 한국수어를 교과목으로 인정해 모든 학생들에게 이를 학습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제안이지만 인식 개선만 이뤄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수어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농인의 사회적 참여와 소통 확대를 위해 수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교수는 “언어적 다양성은 매우 중요하다”며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존재는 사회의 다양성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한 축이 된다”고 전했다.
  수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농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언어다. 이에 제도 개선을 통해 농인들이 원활하게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농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정부 및 기관의 노력과 개개인의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수적인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