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 위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항해사를 만나다
사회적인 통념에 부딪혀 시도하기 어려운 도전이 있다. 많은 이들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사회가 규정한 틀을 깨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존재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어려움을 뚫고 인생을 항해하는 김승주 일등 항해사를 만나봤다.
Q. 항해사라는 직업을 꿈꾸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항해사라는 직업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건 수능이 끝났을 즈음이에요. 수능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명문대학 입학을 꿈꿨지만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 취직이 잘 되는 학교로 눈을 돌리게 됐어요. 서울로 올라가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를 선택해야 했죠. 당시에 제 친오빠가 해양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어요. 그래서 원서를 쓸 때 후보에 포함하게 됐죠. 결국 선택지 중 해양대학교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입학했고 자연스럽게 항해사가 됐어요.
Q. 항해사가 갖춰야 하는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섯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요. 바로 △정신력 △체력 △사교성 △담력 △지구력이에요.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정신력이에요. 배를 타보니까 사소한 순간에도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안전에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배 자체가 고립된 곳이다 보니 외부로부터 지원받기 어려운 상황에는 그 안에서 문제상황을 해결해야 돼요. 그런 어려움이 닥칠 때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력이 필요해요. 해양대학교에서도 이런 부분을 가르치기 위해 제한된 생활을 해요.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신력을 굳건히 하자는 의미에서 그런 것 같아요.
Q. 오랜 기간 배에 타야 하는 어려움을 상쇄할 수 있는 항해사만의 장점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 사실 항해사의 장점이자 단점이 배를 탄다는 거예요. 보통 배를 한 번 타고 난 뒤에 2~3개월 휴가가 있어요. 오로지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배에서는 돈을 쓸 수 없으니 고스란히 돈이 모이는 것도 장점이에요. 그 돈과 시간으로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거죠. 매 휴가마다 어떤 걸 도전할지 생각하고 하나씩 해나가는 재미가 있어요. 제 주변에는 여행을 좋아하는 동기가 있는데 세 달 정도 외국에서 살다 와요. 다음 항해까지 돌아오기만 하면 되니까 다른 직종과 달리 휴가 기간에 시공간 제약이 없죠.
Q. 여성 항해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나요?
저는 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항해사라서 겪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승선을 할 때도 나 자신을 여성 항해사가 아닌 일등 항해사로 여겨요. 그래서 제가 경험한 일이 ‘여성’ 항해사이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려움이 있기는 했어요. 처음 배에 타면 이미 배를 오래 탄 선원들이 경계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어떤 일을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고 지켜보는 기간인 거죠. 그럴 때 저는 잘 모르지만 가르쳐 달라고 터놓고 이야기했어요. 직접 다가가서 솔선수범하고 열심히 하려 노력하다 보니 다른 선원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Q. 항해사로 일하면서 겪은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배에서 사람을 잃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어요. 보통 항해를 할 때 의사가 동행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내부 인원이 해결해야 해요. 하루는 나이가 지긋한 조리장이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니 조리장이 가슴을 치며 살려달라고 하는 긴급한 상황이 됐어요. 알아보니까 폐렴 증상이 있었어요. 다행히 배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때라서 의사가 승선해 진찰하고 조치를 취했어요. 그런데 망망대해에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직업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삼등 항해사로 근무를 시작했을 때부터 항상 진급이 목표였어요. 그래서 지금은 선장이 되는 게 목표예요. 그렇다 해서 진급만 원하는건 아니에요. 배에 타는 걸 지루해하는 선원이 저랑 같이 항해할 때는 배에 탈 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선장이 되고 싶어요.
선장이 된 후에는 앞으로 선장이 될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해요. 선장은 모든 일을 책임지고 결정해야 하는 위치잖아요. 그런데 막상 공부하려고 보니 선장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체계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모든 걸 세세하게 알려주는 지침서를 써보고 싶어요.
Q.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막막함을 느낄 때는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요. 저는 선장을 꿈꾸지만 선장 일을 어떻게 해내야 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번 휴가 때 선장님을 10분 인터뷰하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어요. 약속을 먼저 잡고 뵙기 전에 궁금했던 점을 정리해서 10가지 질문을 드렸어요. 그저 사담을 나누는 것이 아닌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마음가짐을 전하기 위해서였죠. 그렇게 선장님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니 제각기 다른 각자만의 방식이 있더라고요. 인터뷰가 끝날 때쯤엔 모두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선장으로서 겪을 상황은 또 다를 테고 매번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직접 부딪혀보니 그분들과 관계도 형성하고 가르침도 받을 수 있었어요.
Q. 항해사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법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말하고 싶어요. 저도 처음부터 항해사를 꿈꿨던 건 아니에요. 항해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해양대학교에 들어간 게 아니거든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과연 내가 배를 탈까 의문이 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더 많은 도전을 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걸림돌을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3학년이 됐을 무렵 직접 배를 타서 실습하게 됐어요. 그때 같은 배에 탄 항해사들이 대규모 화물선을 운반하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항해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이전에 쌓아온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뒤늦게 목표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항해사가 되는 결과를 이룰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일단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마음가짐을 갖추길 바라요.
Q. 항해사님의 가치관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그 순간 꽂히는 말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영감을 받았던 문장으로 가치관을 표현하고 싶어요. 제가 특히 좋아하는 말은 <강인성의 하버드 스타일>이라는 책에 있어요. 그 책에 ‘인생에서 공부보다 중요한 건 내 눈앞에 몰려오는 수많은 책임과 의무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배짱이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그 말이 배에서 마주쳤던 고난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됐어요. 어떤 일이든 고비는 있기 마련이죠. 고비를 마주했을 때 피하지 않고 여유가 생길 때까지 견디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덕성여자대학교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남이 정한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항해사라는 직업이 여성에게 금기시됐던 분야잖아요. 저는 이 편견을 없애고 싶어요.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는다고 생각하고 끝나버리면 발전을 이루기 어렵잖아요. 제가 다니는 회사도 처음엔 여성을 뽑지 않았어요.그런데 저는 배가 너무 타고 싶어서 여성을 뽑지 않는 회사까지 지원했어요. 그렇게 항해사가 됐어요.
나 스스로를 여성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지 않고 버티다 보면 결국 뒤를 이을 여성 후배들이 잘되는 길이 생겨요. 우리는 아직 어떤 분야에 있어서 소수일 수 있어요. 소수가 평균이 될 때까지 굳건히 버텨주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한계에 가두지 않고 부딪혀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