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는 어디에서 오는가

허무주의로 꿰뚫어 본 현대인의 삶

2025-09-01     장재형 세렌디피티 인문학 연구소 대표

  현대사회 속 우린 쳇바퀴처럼 매일 같은 일상을 영위한다. 노력해도 변화가 없는 듯한 삶은 끊임없이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나는 왜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허무주의를 통해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본다.

 

  반복되는 일상에

  갇힌 현대인


  현대인은 매일 아침 지하철에 몸을 싣고 한 손엔 아메리카노, 다른 한 손엔 스마트폰을 든 채 졸음을 억지로 밀어내며 직장으로 향한다. 대학생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전엔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엔 카페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밤에는 도서관에서 과제와 취업 준비에 매달린다.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침에 기상, 전차로 출근, 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보내는 네 시간, 식사, 전차, 네 시간의 노동, 식사, 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이 행로는 대개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다만 어느 날 문득 ‘왜?’ 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조용히 묻는다. ‘이걸 왜 하지?’ 라는 질문이 감정의 저수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가 불현듯 떠오른다. 아무리노력해도 변하지 않고 뚜렷한 성과가 없는 현실 앞에서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생각에 짓눌린다. 특히 가족을 돌보고 생계를 책임지느라 자기 감정을 억누른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보는 힘마저 잃어버린다. 결국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하루를 이어갈 뿐이다. 삶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목표 없는 노동 속에서 내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시지프’를 묘사한다. 그는 산 정상으로 거대한 바위를 밀어 올리지만 정상에 이르면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지는 끝없는 형벌을 받는다. 이러한 고통은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지친 현대인의 모습과 같다.
  우린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하지만 반복되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세상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인간은 그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세계는 침묵한다. 이것이 카뮈가 말한 ‘부조리’다. 그래서 카뮈는 이렇게 묻는다.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삶을 살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 그 감정 상태는 곧 ‘허무주의’의 늪에 빠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허무주의란 무엇일까?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은 단순히 기독교에서 신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서양인의 삶을 지탱해 온 전통적 가치와 초월적 세계관 전체가 무너졌음을 알리는 말이었다. 플라톤 이후 이어져 내려온 변하지 않는 참된 세계에 대한 믿음과 기독교가 약속한 천국의 세계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됐다. 니체는 이 초월의 세계가 종말에 이르렀음을 알리며 이제 인간은 오직 ‘이 세계’, 즉 현실에 발을 딛고 서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허무주의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니체가 말하는

  허무주의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에서 앞으로 다가올 두 세기의 역사인 ‘허무주의의 도래’를 말했다. 그는 허무주의를 최고의 가치들이 스스로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라 규정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목표가없다. ‘왜?’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결여돼 있다.’ 니체가 말한 허무주의는 단순한 무기력이나 공허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 상태가 아니다. 그는 허무주의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최고의 가치들이 스스로 그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지탱해 주던 초월적 가치들이 힘을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신 △영혼 △이데아 △진리 △선 △도덕과 같은 것들 말이다. 둘째, 그런 가치들의 붕괴는 인간이 향해야 할 방향과 삶을 이끌어줄 목적의 상실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더 이상 대답해 줄 존재 역시 부재하게 된다. 니체에게 허무주의란 곧 △가치 △목표 △의미란 세 가지 축이 동시에 무너져 내린 상태를 뜻한다.

  카뮈가 던진 질문 앞에서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한 경우 이제 우린 다음 두 가지 삶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제시한 허무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로 하나는 ‘수동적 허무주의’고 나머지 하나는 ‘능동적 허무주의’다.
  먼저 수동적 허무주의는 무너진 가치와 목표를 다시 세울 힘이 고갈된 상태다. 그 결과 인간은 △무기력 △체념 △공허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마비된 채 기계적으로 살아갈 뿐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지 못한다. 이것이 곧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 마지막 인간의 초상이다.
  능동적 허무주의는 무너진 가치 위에서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와 목적을 창조하려는 태도다. 이는 허무주의를 넘어 추진력을 발휘해 그 안에서 의미를 창조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능동적 허무주의자들에게 허무주의는 절망이 아닌 새로운 기회가 된다. 바위를 밀어 올리는 끝없는 노동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극복하려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인 ‘위버멘쉬’다.

 

시지프스

 

  긍정과 목표로

  나를 이끌어라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가?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자신의 행복 공식을 제시했다. 그 속에서 우린 허무주의 상태를 넘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니체가 말한 행복 공식인 △하나의 긍정 △하나의 부정 △하나의 직선 △하나의 목표는 허무로 무너진 가치·목표·의미의 빈자리를 메우고 새로운 삶의 궤적을 그리기 위한 실천적 지침이다. 첫째,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과거의 상처와 한계까지 긍정하라.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한 △실패 △불안 △외모 △과거의 상처조차 긍정하는 훈련을 반복하자. 이것이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태도다. 매일 아침 오늘의 나에게 긍정의 말을 할 이유를 한 가지씩 적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훈련이다. △자기합리화 △핑계 △남의 눈치만 보며 살아온 습관에서 벗어나라. 매일 10분 동안 습관처럼 내뱉는 변명을 적고 곧바로 지우는 시간을 가지자. 마음에 들지 않는 습관이나 태도에 주저하지 말고 단호히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SNS에서 포장된 내 모습과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말했던 장면을 떠올리고 솔직히 인정한다. 그 순간 비로소 자기 기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셋째, 하나의 직선은 미루거나 피하지 않고 내가 정한 길을 끝까지 걸어 가라. 늘 뒤로 미뤄온 일 하나를 골라 생각 대신 행동하라. 니체가 말한 직선의 삶은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동력이다. 힘에의 의지는 매일매일 내가 선택한 길 위에 존재의 의미를 새겨 넣는 일이다. 우회하거나 망설이는 습관을 알아차린 즉시 작은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목표는 결국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분명히 정하는 훈련이다. 먼저 1년 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관계 속에 있으며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을지 기록하라.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오늘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하자. 또한 매주 글 한 편을 쓰거나 매일 30분 책을 읽는 것처럼 목표와 연결된 행동 하나를 정하고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하지만 모든 길을 동시에 걸을 순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길을 온전히 내 길로 받아들이고 그 길 위에서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이다. 어떤 답도 밖에서 얻을 수 없다. 정답만 좇다가는 결국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겉돌게 된다. 우린 내면에 단단한 삶의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오롯이 자신만의 삶의 궤적을 그릴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진정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