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향한 찬란한 불꽃, 5.18민주화운동
역사를 기억하며 광주에 응답하다
9월 15일은 ‘세계 민주주의의 날’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5.18민주화운동을 통해 전환점을 맞이했다. 총탄에도 굴하지 않았던 광주의 항쟁은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단단한 초석으로 남아있다. 이에 덕기자가 5.18민주화운동의 주요지였던 금남로에 방문해 항쟁의 역사와 교훈을 되새겨봤다.
덕기자는 5.18민주화운동의 흔적을 찾아 광주 금남로로 향했다. 금남로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펼쳐졌던 역사적 장소다. 지금도 거리 곳곳엔 45년 전의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된 옛 카톨릭센터 앞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총탄 흔적을 간직한 전일빌딩을 만날 수 있다. 빌딩 뒤엔 각종 집회의 중심지였던 △원형 분수대 △광장 △옛 전남도청 일대가 펼쳐진다. 옛 전남도청 일대는 시민군이 최후의 항쟁을 벌였던 장소다. 번화한 도심 사이에 자리한 사적지를 따라 1980년 5월 광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신군부 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일어난 시민 봉기다. 이는 깨어 있는 민중들이 민주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을 확인시킨 투쟁이었다.
덕기자는 그 역사를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방문했다. 5.18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이후 광주광역시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업 기본 조례’를 제정해 기념관 설립을 추진했다. 카톨릭센터는 항쟁의 중심이었던 금남로 한복판에 위치해 기념관 건물로 선정됐다. 이를 개축해 2015년 5월 지금의 기록관이 탄생했다. 기록관 건물은 뜨거웠던 그날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6층에 복원된 윤공희 대주교의 집무실에 들어가니 창문 너머로 금남로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창밖에 펼쳐진 넓은 도로를 내려다보며 이곳이 치열했던 항쟁의 순간을 고스란히 목격한 장소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1층 전시실은 5.18민주화운동의 발발부터 도청 항쟁까지 이어진 10일간의 여정을 재현한 공간이다. 피를 연상케 하는 검붉은 전시실에선 목숨 걸고 투쟁한 시민군의 결의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또한 계엄군을 피해 도망가다 벗겨진 신발들과 난사된 총알들이 재현돼 있다. 이 공간에서 당시 처참했던 현장의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2층 전시실은 △항쟁의 전야 △학살과 투쟁 △시민공동체의 모습 등 민주항쟁의 전개 과정을 기록 중심으로 보여준다. 사진과 영상 속 시민들은 피가 부족한 부상자에게 헌혈로 피를 나누고 시신을 수습하는 일에 자진해서 나섰다. 부녀자들은 주먹밥이나 김밥 등의 음식을 마련해 시민군에게 나누며 항쟁에 참여했다. 기록물에선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도우며 어려움을 이겨낸 광주 시민들의 협동 정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5.18민주화운동이 시민 전체가 하나가 돼 이어간 위대한 공동체적 투쟁임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관람을 마친 덕기자는 전일빌딩으로 향했다. 전일빌딩은 당시 금남로 부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신문사와 방송국이 입주한 언론의 거점이었다. 건물에 새겨진 245개의 탄흔은 계엄군이 헬기를 동원해 광주 일대에 공중사격을 실시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로 남아있다. 전일빌딩 10층에서 마주한 총알 자국은 당시 계엄군의 잔혹함을 짐작케 했다.
전일빌딩의 9층과 10층에 조성된 5.18기념공간에선 광주항쟁 당시 왜곡의 역사와 가짜 뉴스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전두환 정부는 언론을 장악한 후 광주에서 발생한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공수부대를 투입했다고 전국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와 달리 5월 18일 오전 10시경 전남대 정문에서 벌어진 대학생들의 항의 시위는 집회 허가를 받은 합법적인 평화 시위였다. 그럼에도 7공수여단의 과잉 진압을 시작으로 금남로와 충장로에 공수부대가 투입되며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진압 작전이 감행됐다. 은폐의 역사를 마주하니 시민들이 느꼈을 고립감과 분노가 마음 깊이 와닿았다.
이어지는 가짜 뉴스 전시는 5.18민주화운동을 둘러싼 거짓 정보를 바로잡는 영상으로 구성돼 있다. 광주항쟁이 간첩의 소행이었단 거짓 보도부터 시민군이 약탈과 폭력 행위를 일삼았단 허위사실까지 5.18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왜곡된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진실 규명의 중요성과 올바른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실감한 전시였다.
4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군 가담자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996년 ‘5.18진상규명법과 공소시효 배제 특례법’ 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과 국군 보안사령관이던 노태우는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 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다음 해 김영삼 대통령이 모든 관련자를 특별사면해 군 가담자 및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사실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0일의 항쟁 기간 동안 166명의 사망자와 2,61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음에도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남아있다.
그러나 우린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의 교훈과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의 민주주의를 더 단단히 지키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뜨거웠던 광주의 5월은 1987년 6월 항쟁을 이끈 기폭제이자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민주주의로 이끈 장렬한 불꽃이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뜨거운 불씨가 돼 광장의 촛불과 거리의 응원봉으로 언제든 찬란하게 타오를 것이다. 그날의 진실을 기억하고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켜보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광주에 응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