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지 않는 여성 노동

여성 노동자들이 더 나은 노동환경을 보장받으려면

2025-09-28     김다영 기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노동은 필수적이다. 과거 여성의 노동은 가정에서의 가사 노동에 한정돼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들어서며 산업환경에서 일하는 여성이 꾸준히 증가했고 이는 노동시장의 변화를 초래했다. 이에 여성의 산업재해(이하 산재) 보상 현황과 노동환경 실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조선 광업령부터

 산업재해보상법까지


  일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다치거나 질병을 얻기도 한다. 이런 노동자의 피해를 국가가 보상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 등장했다. 산재보험법은 국가가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를 공정하게 보상하고 사회 복귀를 돕고자 제정된 법이다.

  산재보험법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였던 1938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광산 노동자들의 재해가 증가하자 조선총독부는 조선광업령을 개정했다. 이를 통해 광부가 산재를 겪었을 때의 보상 기준을 규정했다. 이후 1948년 헌법이 제정되며 산재 피해자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를 규정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법률의 부재로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에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해 우리나라 최초로 재해보상 기준을 마련했다. 해당 법령은 노동자의 업무상 △부상 △질병 △폐질 △사망의 경우 사용자의 보상 의무를 담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근로기준법만으론 신속한 처리가 어려웠다. 업무상의 산재가 발생했을 시 사용자가 모든 산재보상을 부담해야 했는데 고용주의 경제적 능력 및 태도에 따라 보상이 제각기였다.

  이에 정부는 1963년 산재보험법을 공포했다. 이전과 달리 국가가 사용자로부터 보험료를 징수해 노동자의 산재에 대해 보상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산재 피해자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적용대상이 일부 직종에 한정돼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았다. 또한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 및 근로기준법에 의해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사업을 행한다’는 조항이 있어 여전히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보상체계를 따라야 했다. 이에 1976년 해당 조항을 삭제해 산재보험법이 근로기준법과 별개의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쳐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적절한 보상체계를 마련해 현재의 산재보험법이 만들어졌다.

 

 

  현저히 저조한

  여성 산재 승인율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쳤으나 여전히 산재보험법의 한계가 존재한다. 산재 보상대상은 크게 세 가지로 △업무상 사고 △업무상 질병 △출퇴근 재해가 있다. 이 중 업무상 질병은 직업병과 작업관련성 질환을 포함한다. 직업병은 직업에 의해 발생한 질병으로 업무상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반면 작업관련성 질환은 작업에 의해 악화되거나 작업과 관련해 많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인과관계가 비교적 모호하다. 이는 개인적 특성이나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발병할 수 있다. △직업성 천식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이 이에 해당한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정혜선 교수(이하 정 교수)는 “업무상 질병은 연관성을 확인하기 어려워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에서 인정기준에 부합한지 심사를 거친다”고 전했다.

 

 

  산재로 승인받기 어려운 현실은 여성에게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 고용노동부의 산재 현황분석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산재 승인을 받은 노동자는 총 13만 6,796명이었다. 그중 여성은 25.4%로 전체의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이처럼 성별 간 산재가 인정되는 비율이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일하는 업종의 차이다. 경기도 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2020년 업종별 남성의 산재 발생률은 △제조업 △건설업 △기타의 산업 △운수·창고 및 통신업 순으로 높았다. 반면 여성의 산재 발생 업종은 기타의 산업이 76.3%를 차지하고 △제조업 △건설업 △운수·창고 및 통신업이 뒤따랐다. 이때 기타의 산업엔 △도소매·음식·숙박업 △보건·교육 △서비스가 포함된다. 남녀의 노동환경이 확연히 다름에도 여성 산재 발생 업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업종을 기타의 산업으로만 분류해 정확한 노동환경 파악이 어렵다. 산재 사고 유형의 차이도 존재한다. 정 교수는 “산재 유형이 남성은 주로 떨어짐이나 끼임 등 사고의 원인이 명확한 경우가 대다수다”며 “반면 여성은 서서히 악화하는 질환 중심으로 나타나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답했다.

  더해 현재 산재 인정기준이 성인 남성 기준으로 정해져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단 의견이다. 근골격계 질환은 무거운 중량물을 드는 것을 기준으로 판정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적어도 하루 25회 10kg 이상의 물체를 드는 작업이 근골격계에 부담을 준다고 정의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작업장에서의 여성 근로자 보건 안전 현황과 개선 방안’에 따르면 하루의 절반 이상 근골격계 위험에 노출되는 노동자 중 여성이 30%를 차지했다. 여성의 경우 기타의 산업으로 분류되는 직종이나 가벼운 중량을 반복적으로 다루는 업종에 주로 종사해 해당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산재 현황분석에 의하면 근골격계 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은 노동자 중 여성은 22.7%로 77.2%인 남성보다 현저히 적었다. 정교수는 “여성은 물건이 아닌 사람을 돌보는 일에 많이 종사한다”며 “현재의 기준은 이런 여성의 업무 특성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여성 산재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


  여성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에 관해 여러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현재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질환은 업무상 정신 질환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따른 피해가 처음 산재로 인정받은 건 2011년이다. 당시 피해자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사내 하청 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지속적인 성희롱 및 성추행을 당했고 이로 인한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었다. 이에 피해자는 요양급여를 신청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를 인정했다. 그 결과 피해자는 치료비와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을 산재 인정한 첫 사례가 나오자 산재신청 및 인정 사례가 증가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직장 내 성폭력으로 인한 산재신청 건수는 2015년부터 3년간 매년 증가했고 신청 건수의 약 89%가 모두 산재로 인정됐다. 이에 2018년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을 업무상 재해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않았다.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을 산재의 한 유형으로 포함하기 위한 논의는 여전히 지속 중이다. 

  한편 태아를 산재 대상으로 인정할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이런 논의가 시작된 건 2009년이다. 당시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유산했고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했다. 원인 조사 결과 △화학물질 노출 △환자 폭언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과로로 인한 육체적 부담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피해자들은 산재 보상을 신청했으나 노동 당사자의 질병이 아니란 이유로 보험급여를 받지 못했다. 이후 이들은 2014년 태아 산재 인정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고 2020년 4월 대법원은 태아 산재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당시 산재보험법상 태아는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아 피해 당사자만 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2021년 12월 태아산재법이 국회를 통과되며 태아도 산재 보상 대상으로 포함돼 보험 급여 수급이 가능해졌다.

 

 

  앞으로 개선돼야 할

  여성 노동환경


  산재 인정 범위가 넓어지면서 안전한 여성 노동환경 조성을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8월 고용노동부는 산재보험 및 예방심의위원회를 열어 업무상 질병 산재 처리 기간을 227.7일에서 120일로 대폭 단축했다. 또한 노동건강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은 매년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진행해 산재를 입은 청년 여성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여성의 업무상 질병이 산재로 인정받기가 수월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개선해야 할 점들이 남아있다. 남녀 산재 승인율 차이를 고려해 여성에게 맞춘 산재 인정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정 교수는 “남성 중심으로 설계된 안전보건 기준을 여성 특성에 맞게 개선하고 성인지 관점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여성 산재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노동자가 산재 피해를 입지 않도록 환경 자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한국폴리텍대학 섬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화학공정운전과 나완석 교수(이하 나 교수)는 “국내 산업현장에 무엇보다 사전 예방 중심의 안전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의 산업현장 사전 교육부족 문제도 존재한다. 나 교수는 “일본의 중소기업 안전보건센터와 같이 △외부 지원센터 △사업장 내부 제도 △데이터 기반 예방 체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다양한 개선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더 나은 노동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앞으로 안전하고 평등한 여성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