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언어를 선택할 것인가
말에는 힘이 있다. 말이 가진 힘은 어느 한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 힘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모양을 빚어왔다. 결국 어떤 언어를 선택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를 드러낸다.
역사 속에서 언어는 누군가를 밀어내거나 끌어안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은 시대가 선택한 배제의 언어였다. 여성에게 배움의 기회는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고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이는 단순히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목소리를 낼 가능성 자체를 빼앗기는 일이었다. 교육의 기회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마저 제한시켰다. 그렇게 오랜 시간 여성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자대학교(이하 여대)는 바로 그런 차별적인 언어에 맞서기 위해 탄생했다. 차별받던 이들을 위해 배움의 자리를 만들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한 공간이다. 배움의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곧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는 일과 같다. 여대의 존재 자체가 차별에 대한 저항이며 더 나아가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위한 자리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그 정신의 뿌리는 배제가 아닌 포용이며 차별에 맞서는 연대다.
그렇기에 여대의 역사는 차별의 언어를 거부하고 포용의 언어를 선택해 온 공동체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허락되지 않았던 곳에 자리를 내어주며 만들어진 공간은 여성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목소리를 나누는 광장이 됐다. 그 뿌리를 기억한다면 우리가 선택해야 할 언어는 분명하다. 누군가를 밀어내는 배제의 논리가 아니다.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자리에 함께 머무는 일이다.
익숙한 질서 속 불청객이 등장할 때 마다 우린 두 가지 선택지에 놓인다.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언어를 택할 것인지 혹은 밀어내며 차별의 언어를 내세울 것인지의 갈림길이다. 공동체의 가치는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혐오는 언제나 원색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농담이나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누군가를 부정하고 비난하며 공동체의 경계를 좁혀온다. 가장자리에 선 이들을 위한 자리는 이미 멀리 치워진 상태다.
사회 안에서 소외된 존재를 마주할 때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선다.차별의 언어로 서로를 밀어낼 것인지 혹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언어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린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우린 어떤 언어를 선택할 것인가.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배제의 언어가 아니라 포용의 언어다. 차별에 맞서 연대를 말해 온 역사가 우리 곁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 누군가를 공동체밖으로 밀어내기보단 아직 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말이어야 한다. 공동체의 방향은 결국 우리가 선택하는 그 언어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