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숨을 내뱉을 시간
의도치 않아도 시선이 자꾸 남을 향하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면 부모님이나 친구 심지어 AI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하다. “삶의 주체는 너야. 너 자신에게 집중하렴.” 듣기엔 좋은 조언이지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오랜 수험생활을 거치며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질투한 적이 많았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벚꽃이 만개한 하늘 아래에서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수능 기출을 풀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가 비참하게 느껴졌다. 나의 현실이 불안정할수록 다른 사람의 소식에 더 쉽게 흔들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런 내가 두려워져 무작정 숨기 시작했다. 동네를 거닐 때도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쉬는 날에는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SNS와 연락망도 모두 지웠다. 그렇게라도 현실을 회피해야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러움은 여러 감정의 교집합이다. 사람은 살아가며 누군가를 동경할 수도 있고 시기와 질투를 느낄 수도 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부러움에는 휴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부러움은 멈추지 않는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타인과의 비교는 항상 일어난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동기부여를 얻기도 하지만 열등감을 느끼며 자신을 갉아먹기도 한다. 나도 부러움이란 감정이 마음 안에서 과잉되다 보니 탈이 났다. 처음에는 비교 대상과 비슷해지면 내 삶도 분명 만족스러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를 닮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직 타인만을 부러워하며 열망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권태를 느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일어나기 위해 나는 규칙 하나를 만들었다. 그건 제3자의 조언을 깊이 새기는 것도, 오직 나만 생각하자는 다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날에 한 번은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비우는 시간을 가졌다. 종종 공원 의자에 앉아 자연히 부는 바람에 숨을 내뱉거나 저녁에는 아이스크림을 물고 일부러 중독성이 강한 노래를 들으면서 산책을 했다. 지금이 이런 여유를 즐길 때인가라는 생각이 가슴을 콕콕 쑤실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일수록 의도적으로 나에게 쉼을 주었다.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그 시간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었다. 또한 삶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자 무언가를 해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지며 마음이 한결 안정됐다.
과거의 나는 그저 내 삶의 관객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무대에 직접 서는 법을 알게 됐다. 남과 비교하고 자신을 깎아내리며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이다. 그러니 지금껏 들이마시기만 했던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각자의 걸음으로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