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 된 강요
대중매체의 등장은 위와 지금껏 살면서 다이어트를 한번도 해본 적 없는여성이 있을까. 아마 극히 드문 사례일 것이다. 다이어트는 점점 일상과 밀접해지고 있다. 매체에 나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도 다이어트를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전제가 되었을 때 다이어트는 하나의 생활 패턴으로 굳어진다.
최근 우리사회는 ‘위고비’ 열풍으로 뜨겁다. 위고비란 비만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치료를 위한 체중감량을 목표로 할 때 처방되는 전문의약품이다. 블로그 혹은 SNS 숏폼 콘텐츠를 열면 온통 위고비 효능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치료 목적이 아닌 미용 목적의 글 역시 넘쳐나고 있다. 여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지만 위고비가 다이어트 산업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사제가 이렇게까지 큰 열풍으로 번지는 현상은 어딘가 기이하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살을 뺀다. 건강을 위해서, 예뻐지고 싶어서 등 사람들은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몸을 관리한다. 결국 이는 사회가 요구하는 ‘예쁜 몸’이 언제나 경쟁력 있는 대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린 경쟁력을 갖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한다. 내가 마른 몸을 만들면 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권력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매체에 등장하는 연예인이 체중감량 이후 더 큰 주목을 받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대중은 ‘살을 빼고 더 예뻐졌다’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그들의 가치가 전보다 훨씬 높아졌음을 체감한다. 이렇듯 다이어트는 자기 계발의 대상이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스펙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투자되고 경영돼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이런 맥락에서 몸 자체는 개인에게 속하지만 몸에 대한 의미와 해석은 언제나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중매체의 등장은 위와 같은 몸의 자본화를 더 가속화한다. 다이어트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포 - 애프터’가 바로 그 예시다. 감량 전의 몸을 ‘열등한 몸’으로 간주하며 ‘우월한 몸’에 대한 위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이상적인 크기와 모양을 제시하는 것 또한 서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는 자발적으로 실천되는 외모 관리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대중매체는 마른 몸매에 대한 여성들의 욕망을 매일같이 파고들면서 동시에 마르지 않은 몸을 끊임없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노출시킨다.
다이어트는 더 이상 개인의 취향이나 의지로만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그 선택은 사회가 설정해 놓은 기준 속에서 형성된다. 다이어트와 마른 몸은 언제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차원의 의미가 결합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미지와 평가 속에서 우리의 ‘원함’은 정말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는가. 왜 다이어트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아닌 왜 다이어트를 할 수밖에 없는가를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