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 대신 AI 찾는 청년들
더 나은 대학생 정신건강 지원체계를 위해
청년층의 △우울 △불안 △자살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대학생의 정신건강 지원체계에도 관심이 요구된다. 교내 학생상담센터가 주요 지원 창구로 자리하고 있지만 접근성과 이용에 대한 부담으로 상담을 망설이는 학우들도 있다. 상담센터를 찾지 않는 학우들이 생성형 AI로 향하는 현실을 살펴보고 AI 상담의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적신호 켜진
청년 정신건강
최근 ‘마음건강’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중요한 화두다. 특히 학업과 취업, 경제적 부담 등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청년층에서 정신건강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2025 자살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 자살률은 20~50대 구간에서 OECD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20대 자살률은 OECD 평균의 2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더해 자살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는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정작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전문적 도움을 구하는 경우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대학 학생상담센터의 경우 학우들이 실제로 느끼는 가장 큰 장벽으로 △상담 기록이나 주변 시선에 대한 낙인 △시간적 여유 부족 △첫 상담까지의 심리적 문턱을 꼽았다. 청년층의 정신건강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적 지원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여전히 △사회적 시선 우려 △시간 여유 부족 △부담스러운 상담 비용 등 다양한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생들에겐 별도의 비용 부담 없이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학 내 심리상담센터는 중요한 지원 창구가 될 수 있다.
우리대학 역시 학우들의 심리적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대학 심리상담센터 이현숙 책임연구원(이하 이 연구원)은 “매 학기 약 230~250명의 학생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며 “최근으로 올수록 깊이 있는 개입이 필요한 개인상담 이용 인원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전했다. 이는 학우들의 상담 수요가 꾸준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심리상담센터가 대학생들의 마음건강을 지원하는 주요 창구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상담이 필요한 학우들과 실제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학우들 사이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전문상담기관을
찾지 않는 이유는
전문상담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여러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사회적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다. 상담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단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전문적 도움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20·30대 자살 생각 시 전문가 상담 의향’ 조사에도 이와 같은 경향이 나타났다. 자살 생각 시 도움을 요청한 경험 여부에 대한 질문에 20대 응답자의 53.2%는 ‘아무에게도 요청한 적 없다’고 답했다. 이에 반해 의료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7.6%, 상담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2.7%가 응답하며 전문 인력에 낮은 의존도를 보였다.
상담에 대한 심리적 부담만이 문제는 아니다. 실제 상담을 받기까지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적·물리적 장벽 역시 전문 상담 이용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상담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제한된 인력으로 다양한 업무를 담당한다면 학우가 원하는 시기에 충분한 상담을 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더해 학생상담센터라는 선택지 자체를 고려하지 못하는 학우들도 있다.
지난 8월 본사가 진행한 우리대학 학생상담센터에 관한 설문에서 이윤지(의상디자인 2)학우는 “상담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홍보가 더 잘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에 우리대학 학생상담센터는 학우들이 상담 프로그램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찾아가는 심리건강 캠페인’을 개최하거나 생명존중 주간을 지정해 행사 형태로 학우들을 만나고 있다고 전했다. 더해 접근성 개선을 위해 상담 예약 시스템 간소화 및 익명성 보장 강화로 학우들의 부담 없는 신청을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대학 학생상담센터는 고위험군 학우를 조기에 발견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자살위기개입 매뉴얼’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다만 대학 상담센터 전반의 운영 실태를 살펴보면 이와 같은 위기 대응 체계가 모든 대학에 충분히 마련된 것은 아니다. ‘대학생의 자살예방을 위한 정책제안’에 따르면 자살위기개입 매뉴얼을 갖춘 대학이 61.4%, 자살사망자 발생 시 사후개입 매뉴얼을 갖춘 대학은 31.8%에 그쳤다.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상담센터의 이용률은 저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상담이 필요하지만 상담실의 문턱을 넘지 못한 학우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AI에 기대는 마음
어디까지 괜찮을까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청년층일수록 AI를 상대로 일상적 고민을 쉽게 털어놓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단 법인 중독포럼과 가톨릭대학교 조선진 교수 연구팀이 실시한 ‘생성형 AI 이용 경험과 정신건강’ 조사에 따르면 성인 500명 중 41.4%가 생성형 AI를 거의 매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프랑스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의 11~25세 청소년 3,800명을 대상으로 한 ‘Ipsos BVA’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51%가 정신건강이나 개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AI 챗봇이 더 쉽다고 응답했다. AI가 상담센터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새로운 대화 창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AI와의 편리한 대화가 전문적인 상담을 대체하긴 어렵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은수 전문의(이하 김 전문의)는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단기적인 긴장 완화 효과는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문의는 “상당수 정신 질환에서는 무조건적인 동조가 아니라 불편한 직면을 함께 견뎌 나가는 과정에서 치료적 효과가 발휘된다”며 “AI가 이러한 과정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표정과 말의 속도 등 비언어적 신호까지 살피는 판단이 필요하지만 AI는 이를 수행하기 어렵다.
AI에 대한 의존이 실제 인간관계에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 김 전문의는 “AI를 통해 언제든 원하는 반응을 얻는 것에 익숙해지면 사람을 필요로 하는 욕구가 저하될 우려가 있다”며 “인간관계에서 위축되거나 회피하는 패턴이 굳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AI를 심리교육이나 자기 상태 점검 등 보조적인 용도로 활용하되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는 상담사나 의료진의 도움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난 3월 초록우산이 실시한 ‘생성형 AI 챗봇 안전설계를 위한 이슈 브리프’에 따르면 만 14세 이상 청소년 3,300명 중 49.5%가 ‘AI가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그 중 6%는 자해·자살과 같은 내용을 AI에 질문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에 김 전문의는 “자살사고나 급성 정신병적 증상처럼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AI의 판단에 의존하기보다 전문적인 평가와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대학 학생상담센터 이 연구원은 “AI 상담 과정에서 민감한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따라서 생성형 AI에만 의존하기보단 정신건강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전문 상담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대학생 마음건강
실질적 선행 과제는
대학생의 마음건강을 위해선 단순한 관심을 넘어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대학생이 AI 심리상담에 과의존하지 않도록 관련 교육과 이용 안내를 마련해야 한다. 아주대 디지털 휴머니티융합학과 정경훈 교수는 “AI는 인간의 깊은 감정과 무의식을 이해할 수 없다”며 “AI가 가진 심리상담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초등부터 성인까지 폭넓게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문의 역시 “AI와의 대화를 통해 일차적인 어려움을 파악했다면 반드시 전문의 진료로 이어지도록 안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AI 챗봇 이용자에게서 위기 신호를 감지했을 시 전문 상담 창구와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안내하도록 관련 규정 역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대학생이 AI가 아닌 전문적인 심리상담 기구를 찾을 수 있도록 대학 내 상담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대학 학생상담센터는 학기 중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대면상담을 운영하고 있어 오후 수업 이후엔 상담을 이용하기 어렵다. 또한 방학 중 긴급상담을 제외한 비대면 상담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지 않아 대면상담이 어려운 학우들에게 접근성이 낮다. 이에 운영시간을 확대하고 온라인 상담이나 비대면 프로그램을 개설해 상담 창구를 다양화해야 한다. 현재 한서대학교는 △대면상담 △전화상담 △화상상담의 세 가지 상담 창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의 경우 이메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발표한 『2025 대학 발전을 위한 정책 건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들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건강·심리지원 플랫폼을 구축하고 대면 접근이 어려운 계층을 위한 접근성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학 학생상담센터와 외부 지원체계의 연계도 강화해야 한다. 건양대학교와 신한대학교에서 시행 중인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또래 게이트키퍼 프로그램은 학생 주변의 위기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전문기관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경상국립대학교 학생상담센터는 대학생 마음건강을 위한 안전망체계를 구축해 정신건강고위험군 대학생을 조기에 발굴하고 진주시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계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 내 상담에만 의존하기보다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정부의 지원사업 등 외부 기관과 연결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상담 창구의 높은 문턱과 AI 과의존으로 마음건강의 위기 신호를 놓치는 대학생이 없도록 대학 차원의 마음건강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