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진 시간을 사는 청년들
대학생 A씨의 알람은 요일마다 다르게 울린다. 월·화요일에는 오전 8시 카페로, 목·금요일에는 오후 2시 학원가로, 주말에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번듯한 ‘N잡러’나 프리랜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터를 쪼갠 ‘메뚜기 알바생’의 하루다. 고용 지표는 청년 취업률 사상 최고라며 훈풍을 노래하지만 정작 청년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한없이 시리다. 지표의 착시 뒤에 숨은 본질이 일자리의 풍요가 아닌 하나의 노동이 서너 개로 부서진 ‘노동의 파편화’이기 때문이다. 쪼개기 알바는 이제 청년 세대의 일상을 지배하는 거부할 수 없는 기본값이다.
이 기형적 구조의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하려 만든 ‘주휴수당’ 제도가 있다. 주 15시간 이상 일한 노동자에게 유급 휴일을 보장하도록 한 법조항이 청년들을 안정적인 일자리 밖으로 밀어내는 부메랑이 된 것이다. 인건비 부담을 피하려는 고용주들이 주 14시간짜리 초단기 일자리를 양산하며 시장은 순식간에 잘게 쪼개졌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초단기 고용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나아가 정부의 고용 통계는 이러한 현실을 왜곡하며 착시를 심화한다. 일주일에 단 한 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하는 통계 방식 탓에 청년 고용률은 사상 최고라는 화려한 수치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주휴수당도, 퇴직금도, 4대 보험도 없는 질 낮은 일자리가 가득하다. 화려한 지표는 청년 노동의 질적 저하와 구조적 불안정을 은폐하는 가림막이다.
잘게 부서진 일터는 청년의 삶마저 파편화한다. 여러 일터를 전전하며 온종일 시간을 쪼개 써도 손에 쥐는 것은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낼 생존 비용이 전부다. 일한 만큼의 축적도 내일에 대한 기약도 없는 노동 속에서 청년들은 미래를 기획할 동력을 잃는다. 매달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정한 일상에서 장기적인 △주거 △교육 △결혼 계획은 사치다. 조각난 일터 속에서는 공동체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몇 달 혹은 몇 시간 단위로 스쳐 지나가는 일터에서 정서적 공동체가 형성될 리 만무하다. 동
료와 관계를 맺고 소속감을 느낄 시간적, 심리적 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들은 소외감을 느끼며 홀로 부유하는 원자화된 노동자로 전락한다. 이제 노동은 내일을 도모하거나 사회적 소속감을 얻는 통로가 아니다. 그저 매일 아침 반복되는 굴레 속에서 하루치의 생존 비용을 벌기 위한 소모적인 행위이다.
청년의 노동을 소모품처럼 잘게 쪼개 쓰는 사회에 내일은 없다. 오늘의 생존을 위해 시간을 저당 잡힌 청년들에게 미래를 기획하라는 요구는 공허한 메아리다. 이제는 기형적인 시장을 방치하는 법 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워야 한다. 쪼개기 고용의 원인인 주휴수당 제도를 시대에 맞게 개편하고 시간당 노동에 합당한 퇴직금 기준을 마련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노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패러다임 역시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내일의 디딤돌이어야 할 노동이 그저 하루치 생존을 위한 소모전으로 전락할 때 공동체 역시 미래를 잃는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기형적인 고용시장을 청년들의 유연성과 활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것인가. 쪼개진 시간을 다시 온전한 삶으로 이어 붙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라는 시계는 결국 멈춰 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