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대학, 그거 왜 필요해?

2026-09-14     김주희 차미리사교양대학 교수

  새 학기 첫 시간, 학생들에게 왜 여성학 수업을 신청했는지 묻는다. 매 학기 빠지지 않는 답이 있다. 여자대학을 다니며 마주한 질문들에 스스로 답해보고 싶다는 것. 학생들은 각각의 자리에서 일상적으로 ‘여대’를 둘러싼 각종 평가와 질문을 마주한다. “여자들한테는 여자대학이 좋지”라는 격려를 가장한 폄하, “21세기에 여자대학, 그거 왜 필요해?”라는 질문을 가장한 무례. 졸업 후에도 ‘모교’라는 이름과 함께 이러한 질문이 줄곧 따라붙는다.

  고등교육에서만큼은 성평등이 달성됐다고 말하는 시대, 여자대학은 왜 필요할까? 내 생각에 이 질문은 여자대학 스스로가 먼저 던져야 하는 것이다. 최근한 여대의 공학 전환 논의와 관련해 ‘경쟁력 강화’라는 이유가 등장했다. 이러한 논리는 남학생의 유입이 곧 경쟁력의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성차별적 전제를 깔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물어야 할 것은 공학 전환이라는 결단보다 ‘여학생’을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그간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하는지 묻기를 멈춘 대학의 오래된 태만일 것이다. 공학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학생들의 삶과 배움에 성별이라는 조건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필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자대학의 의미를 단지 ‘여자만 모인 대학’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대학 구성원을 하나의 생물학적 동일성으로 묶는 순간 그 정의는 사실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동시에 여성은 그 자체의 범주가 아니라 남성을 기준으로 한 지식 체계에서 늘 ‘차이’로 설명돼왔다.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이 역설적 위치에서 여성들이 되물어야 할 것은 결국 그 기준 자체다.

  하지만 정작 여자대학이 스스로를 설명할 때 손쉽게 등장하는 논리가 있다. ‘여성 인재가 아닌, 사회가 필요한 인재’를 기르겠다는 말이다. 언뜻 보편적 교육을 지향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 보편은 성별을 지운 자리에서만 성립하는 편협한 보편이다. 여자대학이 감당해야 할 몫은 보편적 가치 자체가 성별을 고려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여성 인재 양성’을 특혜의 언어로 취급해 지우는 순간, 여자대학은 자신이 답해야 할 질문에서 한 발 물러난다.

  여자대학이라는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성별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 △평등 △규범을 어떻게 가르치고 질문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실천이다. 성평등은 이미 달성됐다고 말하면서도 공학 전환을 ‘경쟁력’으로 설명하길 주저하지 않는 세계에서 여자대학은 저절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해외의 유서 깊은 여자대학들은 왜 여자대학으로 존재하는지, 그 역사를 오늘의 교육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스스로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

  여자대학에 다니며 떠오른 고민에 답을 찾고 싶다는 학생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그 답을 학생 각자가 혼자 마련하게 두지 않는 것. 성별이 우리의 삶과 지식을 어떻게 조직해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하는 작업은 여성학 교실의 문턱을 넘어야 할 것이다. 여자대학의 의미는 바로 그 확장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