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가 되자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에게 상식처럼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금붕어의 기억력은 3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기억력이 3초뿐이라면 어떨까. 오늘 먹은 점심은 당연히 기억나지 않을 테고 방금 나눈 대화조차 머릿속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금붕어가 되고자 주장하는 데에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이불킥’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불과 킥(Kick)의 합성어로 잠들기 전 침대에서 과거의 흑역사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일컫는다. 당신이 한 번이라도 이불킥을 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주의 깊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금붕어같은 기억력 덕분에 이불킥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증거도 있다.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친구가 기분이 좋지 않은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올라가 다시 만난 친구는 조심스럽게 과거에 다툰 뒤 나를 무시했던 사실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나는 친구와 다투었던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날 깨달았다. 나는 정말 짧은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구나. 그런데 창피하기보다는 신기했다. 이런 일까지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다니. 나는 생각보다 훨씬 잘 잊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성격이 단점투성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엔 가볍거나 무례한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친구들은 밤마다 오늘 했던 말과 행동을 되짚으며 후회하고 고민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불킥은 흑역사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흑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어떨까. 바로 금붕어가 되는 것이다. 조금은 억지스럽게 들릴 수 있지만 금붕어처럼 살아 보면 인생이 한결 편해진다.
물론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반성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흑역사는 생각보다 나 자신에게만 크게 남아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각하고 고칠 점만 남긴 채 잊어버리자. 사건은 잊되 교훈은 남기는 것이다. 지나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이미 저지른 실수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굳이 붙잡고 괴로워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사실 금붕어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나는 금붕어만도 못한 기억력을 가진 셈이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 밤 이불을 걷어차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른다면 우리 함께 금붕어가 되어 보자. 내 실수도 타인의 반응도 지나치게 오래 붙잡아두지 말자. 고칠 점만 남기고 나머지는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잠자리에 든다면 내일 아침은 분명 더 상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