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편집장의 변

올드에디터 다이어리

2007-08-25     배현아

광복절 관련 집회가 한창이던 날 나는 광화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지난해의 나는 같은 곳에서 집회를 취재하고 사람들과 인터뷰하고 있었다. ‘동지갗 하나에 가슴이 불끈불끈 뛰어오르던 지난해의 나, 신문사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올해의 나. 너무도 달라진 내 모습에 바깥 스피커에 귀 기울이며 예전의 뜨거움을 느껴보려 했을 뿐이다. 그리고 우연히 광화문에서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후배기자를 만나면서, 신문사일은 마쳤지만 아직 사령은 나가지 않았다고 위로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퇴임이라는 사실이 어느덧 느껴진 요즘이었다. 드디어 퇴임했다. 아니, ‘벌써’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2년 반.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그 시간을 견딘 내가 징글맞기까지 하다. 늘 과부하와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마감에 쫓기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취재원과 인터뷰이를 만날 때까지 놓을 수 없는 약속 취소에 대한 불안감, 몇 번은 물먹을 각오를 해야 하는 청탁, 그 외 갖가지 변수, 그리고 신문사 업무에 대한 결정과 그에 따르는 어떤 두려움 같은 것. 기억이란 주관적이라지만 나야말로 24시간 데드라인 상태였다는 것은 자명하다. 또 후배나 선배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속내를 나눌 동기가 한명도 없다는 것이 때로 서글펐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고등학교 때의 바람대로 학보사 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를 처음 보고 멍하니 서 있다 찾아간 신문사 앞에서 몇 번을 고민하다 돌아간 2년 반 전의 수줍은 새내기의 모습이 뇌리에 또렷하다. 1년 후 동대문 풍물시장 상인 인터뷰기사를 쓰며 눈물 흘릴 수밖에 없던 폼 나는 사회부 기자의 모습도 너무나 생생하다. 오랜 바람이 가슴을 두드리는 열정이 되었고, 그것은 한없이 땅으로 꺼지고만 싶을 때 잡아준 나와의 약속이자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또 무엇보다 나와 함께 이 길을 걸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지극히 상투적이지만 매우 당연한 말을 하고 싶다.

잘해야 했고 잘하려 했지만 딱 1년 전 신임편집장의 변에서처럼 진보를 넘어 비범하고 재미있는 신문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많은 학생이 학교신문이 있는지도 모르는 대학언론이 맞닥뜨린 세태에 신문을 애독해준 독자들에게 고맙다. 아울러 새로운 자리를 맡은 후배들이 보란 듯이 잘해내길 바란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제 덕성여대신문의 훌륭한 애독자이자 덕성여대신문사 출신의 썩 괜찮은 선배가 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배현아(심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