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머물다] 위안의 발걸음

2008-05-19     오보람(사회복지 4)


고민이 많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면 이 거리 저 거리를 걸으며 자신을 달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머릿속이 뒤죽박죽일 때면, 발바닥이 따가울 정도로 걷게 된다. 하지만 서울 시내에 어디 마음 놓고 걸을만한 곳이 있던가. 차들 뒤엉키는 소리와 매캐한 공기 그리고 사람들의 분주함만으로도 복잡한 머리가 더 지끈해질 지경이다. 몸과 마음이 오히려 더 지치는 이런 걸음은 그만해야하지 않을까.

 

얼마 전 나는 좋은 산책로를 갖게 되었다. 그 길은 바로 남산 산책로이다. 나 혼자만의 산책로는 아니지만, 홀로 즐길 수 있는 산책로는 그만이다. 우선 산책로가 산에 있다 보니 길을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로 시작해서 벚꽃이 피고 벚꽃이 수그러들 때면 라일락이 핀다. 일반 길가에서 보는 자그마한 라일락나무를 상상하지 마라. 남산에 있는 라일락은 제법 기둥이 두꺼운 라일락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는데, 꽃이 필 때면 남산전체는 라일락향기로 뒤덮인다. 그리고 요즘은 단내가 진동하는 아카시아가 활짝 피었다. 이처럼 남산 산책로는 자연을 벗 삼아 걷기에는 최고인 것이다.  

  

게다가 남산 산책로는 교통편을 이용하기도 쉽고, 출입할 수 있는 길도 다양하다. 너무 다양해서 그 방법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궁금하다면 인터넷으로 ‘남산공원’을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즐겨 산책하는 코스는 짧게는 한옥 마을 부근에서 국립 극장 부근까지(왕복 40분), 길게는 한옥마을 부근에서 서울타워까지(왕복 1시간 30분)이다. 걷는 것에 낮밤을 따지겠냐마는 나는 밤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의 정취가 있지만, 밤에 남산 산책로를 홀로 걸으면, 서울 시내의 야경과 더불어 낮 동안의 들뜸과는 사뭇 다른 고요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 밤이라서 무섭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책로는 가로등이 촘촘히 불을 밝히고 있고,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도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불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남산 산책로에 들어서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면 남산타워가 보이고, 아래를 둘러보면 국립극장·한옥마을·동국대학교·남산도서관·용산도서관·야외식물원이 보인다. 곳곳에 샛길이 나있어, 다리 아픈데 출구가 하나라 포기 못하고 오기부리며 갈 필요도 없다. 덧붙여 믿거나말거나 할 귀뜸을 해주자면, 월요일마다 한옥마을에서 모방송사의 일요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한단다.

 

혹시 지금 조용히 혼자 고민하고 싶은 문제들이 있진 않은가. 그런데 어디를 돌아다녀야할지 모르겠다면, 주저 하지 말고 발걸음을 남산으로 재촉하길 바란다. 그 발걸음은 틀림없이 후회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