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진짜 이름은

2008-09-27     김민지 기자


얼마 전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 “나 아줌마 아니야, 내 이름 정희연이란 말이야. 정희연” 이 아줌마, 아니 정희연씨는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가족들에 대한 울분을 ‘아욱’을 모른 채 하는 채소가게 주인에서 터뜨린다. ‘아욱도 야채야. 왜 아욱을 무시 하는거야,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그 장면이 참 마음 아팠다. 드라마를 같이 보시던 어머니가 조용한 목소리로 ‘저 마음 알지’라며 공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이름이 없다. 처음엔 이웃사람들에게 ‘새댁’으로 결혼 몇 년차에는 바로 ‘누구 엄마’혹은 ‘아줌마’로 활동하다보니 본래 자신의 이름은 불릴 새도 없는 것이다. 단지 호칭상의 변화만 있는 것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호칭은 어머니의 인생에 새로운 막을 열어준다. 엄마, 그리고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에서 그 이름만큼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진짜’ 이름을 찾아줄 사람은 정말 없는 것일까. 하루 동안 취재를 위해 어머니의 뒤를 함께 하다 보니 사실 그 진짜라는 것은 그리 멀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담소 속에서 어머니는 어머니의 얼굴 대신, 나의 얼굴 혹은 동생의 얼굴, 아버지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칭찬에 웃으며, 때로는 비난에 더러 화를 내시면서 말이다. 그 얼굴을 보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잃어버린 줄 알았던 진짜 이름 중 하나는 바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