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 펼쳐진 '강도론' 논쟁

2010-03-02     이경라 기자
 지난 2월 10일 세종시 문제가 ‘원안 대 수정안’이라는 갈등의 프레임을 벗어났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충청북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가장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러한 이 대통령의 발언에 박근혜 전 대표는 “집안 사람이 마음이 변해서 강도로 돌변하면 그 땐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강도가 왔는데도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받아쳤다.
 이에 대한 파장이 점점 커지자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이야기한 ‘강도’는 세계 경제 위기를 지칭한다”고 급급히 해명했다. ‘강도’라는 비유가 청와대의 설명대로 국제적 문제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 발표 후 처음 충북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니 누가 봐도 수정 반대론에 대한 불쾌한 마음를 드러낸 것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주고받은 ‘강도’ 논란은 세종시 문제가 권력 싸움으로 변질된 단면을 보여준다. 이렇게 한 지붕 아래에서 싸움만 하다가는 앞으로도 세종시의 원안과 수정안에 대한 내용은 뒷전으로 내몰리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정면충돌이 서두에 오를 게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보았던 케이블TV의 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자막이 생각난다. 출연진들끼리 험담을 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으로 ‘막말 속에 오가는 정, 막말로 채워지는 방송분량’이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한 나라의 대표로서 한 지붕 아래에서 파를 나누어 서로를 견제한다면 어찌 정을 쌓아 민심을 얻을 것이며, 서로 위험한 발언만 주고 받으며 어찌 한 나라를 꾸려나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