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덕성인, 긍지를 가져라

2010-10-09     정민지, 이연주 기자

   “인생 개척을 통해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한 동문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본 학우라면, 가난을 극복하고 보험사 국장의 자리까지 올랐던 권양자(가정학과 53) 동문의 성공 스토리에 귀기울여보자.
  

   권 동문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족함이 없었기에 타인에게 베푸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와 국가에 보탬이 되는 일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를 배우며 성장했다고 한다. 권 동문은 중학교 교과과정을 이수한 후 서울사범(現 서울교대)을 졸업하고 우리대학 가정학과에 입학하였다. “그 당시 대부분 학생들은 등록금을 제때에 지불하기도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휴강 공고가 나기라도 하면 다들 슬퍼했어요. 더 많은 가르침을 받고 싶었으니까요.”
   대학을 졸업한 후 권 동문은 초등학교에서 20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주변 사람을 살필 줄 아는 권 동문의 마음가짐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여실히 드러났다. 가난한 제자들을 일일이 감싸 안았고, 그들을 위하는 진심어린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래서일까.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 제자는 지금까지 매년 편지를 보내 권 동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한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면서 생전 처음으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자식들에게 도시락을 싸 줄 여력조차 없었다. 동반 자살까지 생각 할 정도로 너무나도 힘들었다”고 말하는 권 동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권 동문은 좋아하던 교사직을 그만두고 좀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보험업으로 직업을 전환하면서 신발이 닳도록 일했다. 물론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이었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했고 6개월 만에 소장으로 진급, 국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당시 국장은 총 40명으로 여자는 단 한 명, 권 동문뿐이었다고 한다. 국장의 자리에 올랐어도 권 동문은 자신을 있게 만들어준 부하 직원들을 잊지 않고 일일이 챙기는 등 가슴으로 그들을 이끌어 나갔다. 결국 정년퇴임기간인 50세를 훌쩍 넘어서까지 국장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극복하고 ‘성공사례 강연’도 수차례 한 권 동문은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우리 대학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만큼 더 발전해야 해요. 대학구성원 모두 학교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단결하여, 훗날 저처럼 사람들에게 ‘나는 덕성의 딸이다’라고 자랑해도 부끄럽지 않은 멋진 덕성인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