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학술문예상 소설 심사평> 일상과 내면을 넘나드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2010-11-24     신지영(독어독문) 교수
<시간이 가는 약을 삼키고>는 영화 ‘매트릭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단편이다. 이 이야기는 시간(나이)까지 자본화하는 시대, 기계/기술의 시대 등 암울한 미래에 대한 시나리오로, 동시에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겠다. 형식적으로는 ‘나’에서 ‘그’로 그리고 ‘엄숙한 바보’에서 다시 ‘그’ (내지 ‘바보’)로 이어지는 시점의 변화,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인물들을 K와 R, S 등 영문이니셜로 처리한 것 등 주인공이 느끼는 낯섬, 소외감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문제는, (암울한) 미래라는, 벌써 상투적이 돼버린 배경과 주제가 제대로 엮이지 못하는데 있다. 주변인물들과 주인공과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고 (의사와 환자, 고객과 공급자의 관계일 뿐인지, 양부모와 자식의 관계인지, 태어난 지 2년만에 입양이 되었는데 여동생은 왜 있으며 양부모가 의사인 K라면 돈은 왜 필요했는지), 10년간의 시간을 팔았다고 해서 10년 전의 기억을 다 잃어버리는 것인지 등 세부사항 (배경)에 대한 의문으로 인해 독자는 정작 당면했어야 했을 기억과 정체성의 문제를 놓치는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서, 과거에 대한 주인공의 집착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바뀌는 과정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정제된 한글표현과 섬세한 상황묘사 등은 칭찬할 만하다. 이 작품을 가작으로 선정한다.
<와크와크 섬>은 취업전선에 선 젊은이들의 일상과 내면을 현실과 환상을 오가면서 그리고 있다. 취업을 위한 지루하고 반복적인, 건조한 일상은 건조하고 담담한 언어로 묘사되지만, 죽기 위해 태어나는 소녀들을 만들어내는 와크와크 나무를 묘사하는 환상적인 대목은 느낌과 색채가 풍부한 감각적인 언어로 묘사되어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면서 젊은이들의 고뇌와 절망을 잘 전달하고 있다. 졸업논문 의뢰자가 자신의 취업경쟁자로 밝혀지는 결말의 반전도 좋다. 자칫 ‘취업수기’로 전락할 수도 있는 글을 신선한 상상력으로 승화시켰다. 이 글을 우수작으로 선정한다. 심사자의 마지막 질문이라면, 죽기 전에 소녀들이 외치는 ‘와크와크’는 무슨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