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히 남은 기록, 대추리 전쟁

2011-04-09     김수경

 

  전 지구적인 이상 한파와 방사능의 공포가 우리 삶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환경과 먹을거리에 대한 우려는 우리의 이목을 다시금 ‘땅’으로 집중시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한 개발, 이주, 환경파괴의 욕망은 아직도 가실 줄을 모른다.

  2011년 4월. 평택 팽성읍 노와리에 자리를 튼 대추리 어른들의 모습이 사뭇 생경하다. 그 곳의 주인으로 들어가 앉았으나 그 곳은 그들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2006년, 폭력적이고 반 인권적인 행정 대집행으로부터 어느덧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4년여의 시간을 떠돌다 2010년 말 정착촌이 완성된 노와리에 새로 입주한 대추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지금은 평화가 찾아왔을까. 경찰의 방패에 찍히면서도 ‘농작물을 밟지 말라’던 농부로서의 삶은 여전할까. 대추리 전쟁은 이제 끝이 났을까.

  정일건감독의 <대추리 전쟁>은 아직은 생생하고 활기찬 2005년의 대추리로부터 시작된다. 대추리의 주민들은 대대로 대추리에서 농사를 짓고 삶을 일구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삶과 땅을 자식에게로 전하고 싶었으나 국가는 이 당연한 꿈을 허용하지 않았다. 2년여의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2006년, 주민들은 자신의 농토가 전쟁기지가 되는 참상을 뜬 눈으로 지켜보며 그 곳을 떠나야했다. <대추리 전쟁>은 그 마지막 1년의 온전한 기록이다. 이 ‘온전한 기록’은 인간을 중심으로 함몰되지 않으며 어떤 주된 의견만을 선별적으로 돌출시키지 않음으로서 가능해진다. 투쟁의 과정을 다룸과 동시에 농사일의 노고를 놓치지 않고,  인간사를 다루면서도 자연의 순환을 꼼꼼히 관찰하며, 투쟁하는 주민에 끊임없는 응원과 연대를 보내면서도 수용 주민의 입장에도 귀를 기울인다. 이러한 포괄적 관점은 삶과 생명, 공동체 모두를 한 칼에 무너뜨리는 국가권력에 대한 강렬한 문제제기의 근거이며 ‘그렇게 쉽게 물러나지 않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무기가 된다. 모든 이가 그 곳을 떠났지만 다른 공간에서 계속되는 투쟁과 대추리 황금들녘의 연속된 편집은 적잖은 위안을 제공함과 동시에 전열의 재정비를 요청했다.

  아직 대추리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몇몇의 대추리 주민들은 이주를 겪으며 빚더미에 올랐고 농사를 지을 땅이 마땅치 않아 하루하루를 공공근로로 연명하고 있다. <대추리 전쟁>을 통해 생명과 삶의 땅이었던 당시의 대추리를 다시 한 번 목격하자. 그리고, 지금의 대추리를 다시금 살펴보자. 우리는 대추리를 너무 빨리 잊었다.

* 정일건감독의 <대추리전쟁>은 다큐공동체 ‘푸른영상’에서 DVD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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