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제73회 순국선열의 날

2012-11-20     손혜경 기자, 이연지 기자, 이은영 기자


  지난 17일은 제73회 순국선열의 날이었다. 기자들은 순국선열들의 헌신을 재조명하고 그 가치를 되새기고자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 그곳에는 아직도 애국지사들의 굳건한 얼과 의지가 남아있었다.

 

  1. 철과 담도 꺾을 수 없는 기개
  서대문형무소로 들어서는 길에는 두꺼운 철문과 드높은 담장이 자리를 잡고 서있다. 그 선명한 경계 안쪽의 시간은 북적이는 바깥 풍경과 대조적으로 아직도 20세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 너머에 여전히 독립을 향한 애국지사들의 염원이 느껴지는 듯 했다.


  2. 선열들의 한이 서려있는 사형장
  사형장에는 억울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선열들의 아픔이 서려있다. 그 입구엔 1923년 사형장 건립 당시 식재됐다는 미루나무 두 그루가 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 나무를 붙잡고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하는 원통함을 눈물로 토해내며 통곡했다. 이 나무가 ‘통곡의 미루나무’다. 그런데 사형장 안쪽 나무와 바깥 나무의 크기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너무나 억울한 한이 서려서 잘 자라지 못한 걸까.


  3. 애국지사들의 고통이 느껴졌던 옥사
  1919년 3·1 만세운동으로 애국지사들의 수가 증가했다. 이들을 탄압하고 수감하기 위해 1922년에 옥사가 지어졌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인 독방에는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감옥 내에는 별도의 화장실이 없었고 통풍과 채광마저 잘 되지 않아 비위생적이었다. 힘든 감옥생활에서도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던 설명을 보며 애국지사들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4. 고된 노동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작사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던 공작사. 수감자들은 하루에 최소 10~14시간 동안 일을 했으며 취침 전까지 작업이 계속됐다. 공작사에는 간수와 수감자들의 식기가 전시돼 있었다. 간수의 밥그릇은 깨끗했지만 수감자들의 밥그릇은 성한 곳이 없었다. 또한 수감자들에게 주어진 밥의 양조차 적었다고. 배고픔을 느끼며 고된 노역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 비좁은 공간에서 대화마저 금지된 운동 공간, 격벽장
  격벽장은 교도소 내 유일한 운동시설이다. 부채꼴 모양의 격벽장에는 수감자들이 운동할 때 서로 대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감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여러 개의 벽(격벽)이 세워져 있다. 교도관의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빽빽한 격벽 사이에서 답답함이 느껴졌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한 목숨 바친 애국지사들의 정신보다 고귀한 가치가 있을까? 하지만 세대를 거듭할수록 순국선열들에 대한 감사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선열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고개 숙여 묵념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하는가? 어떻게 우리가 이 좋은 땅에서 살게 됐는지 잊고 살아왔다면 잠시 눈을 감고 순국선열을 향한 감사함을 표현해 보자. 그들이 우리의 역사를 존재하게 해줬던 만큼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역사를 기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