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2012-12-03     홍유빈 기자

  지난 3월 28일은 학생총회가 열린 날이자 내가 덕성여대신문사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한 날이다. 학우들이 스스로 안건을 결정하는 모습과 총장실에 찾아가 면담을 요청하는 모습, 그리고 학생회의 현수막 퍼포먼스에 크게 감명 받은 내 눈에 띈 건 덕성여대신문사 수습기자 모집 광고였다. 대학교 신입생의 3월은 한창 패기 넘칠 때가 아닌가. 그 길로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수습기자 지원서를 쓰기 위해 학생회관 인터넷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이후 몇 개월 동안, 나는 그 순간을 정말 뼈저리게 후회했다.

  알람에도 잘 깨지 않는데 문자 알림음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깰 때마다, 꿈에서까지 마감에 시달릴 때마다 이번 호만 지나면 그만 둘 거라고 다짐했다.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길거리인터뷰를 요청하는 나와 동기들을 냉정하게 무시하는 학우들도 원망스러웠다. 아파서 수업은 통째로 빠져도 마감 때문에 신문사는 가야 했다. 방학 때 여행 한 번 못 가고 서울에 찾아온 엄마를 못 만났을 땐 서럽고 억울했다. 모든 것이 버거웠다. 왜 사서 고생인지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그렇게 두 학기가 지났다. 그동안 ‘홍유빈 기자’는 598호부터 607호까지 10부의 신문에 이름을 올렸다. 도망칠 기회가 열 번 있었음에도 나는 이번 년도 마지막 신문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만 두겠다는 생각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신문사에 남으라고 강요한 사람도 없었다. 내 발목을 잡는 것은 아직도 네 이름 실렸다며 신문의 사진을 찍어 보내는 친구들과 자모퀴즈를 응모한 학우들이 적어준 ‘신문 잘 보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최종 교열 작업을 하는 날 내 기사들이 인쇄된 모습을 보기 직전의 설렘, 발행된 신문을 볼 때의 뿌듯함도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매번 그만 둘 거라고 다짐하지만 그 다짐이 지켜지지 못하리란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언젠가 나는 또 그만 두겠다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감 주엔 나 자신에게 그만둬야 하는 각종 이유를 들어가며 최면을 걸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그때도, 여전히 편집 디자이너가 최종 교열 작업을 위해 가져온 신문 인쇄본들을 꺼내는 그 순간 설렐 것이다. “이번에 나온 신문을 봤냐”고 눈에 띄는 사람에게 물어 볼 것이고 그들의 “신문 잘 읽고 있다”는 말에 기뻐할 것이다. “그만둔다며”하는 사람들에겐 멋쩍은 웃음으로 답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임기 동안 여전히 덕성여대신문사 기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