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서 커피까지’ 행복을 볶는 노원실버카페

2013-04-15     손혜경 기자

  날로 증가하는 노인인구에 힘입어 ‘실버’ 열풍에 가속이 붙더니 이제는 노인들이 만들고 노인들이 소비하는 ‘실버카페’까지 생겼다.
  나른한 오후, 노원구 중계근린공원에 위치한 팔각정 모양의 실버카페에 들어서니 희끗희끗한 머리를 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앉아 담소를 나누며 ‘티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젊은이들의 문화라고만 생각되던 카페가 어르신들로 꽉 차 있으니 낯익은 풍경은 아니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고운 계량한복을 맞춰 입고 커피를 만드는 ‘실버 바리스타’들이었다. 실버카페와 실버 바리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국 1호 실버카페인 ‘노원실버카페’에 찾아가 유재춘(여. 66) 실버 바리스타를 만났다.


 


  ‘실버’라고 하기엔 동안이신데요. 어떤 계기로 실버 바리스타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개인적으로 카페를 열고 싶었지만 그게 생각만치 잘 안되더라고요. 그러던 찰나에 딸아이가 인터넷에서 ‘실버 바리스타’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나한테 추천해줬어요. ‘이거다!’ 싶었죠. 그래서 두 달간 학원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자격증까지 딴 다음에 여기서 이렇게 일하게 됐어요.

  바리스타 일을 하시면서 생활에 큰 변화도 생겼겠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나와서 일을 하는데 운동도 되고 아주 좋아요. 무엇보다 사람을 본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집에만 있으면 남편에, 자식에 치여서 짜증만 나고 밖에 나가기도 싫고 우울증 걸릴 것 같았거든요. 여기 나오니까 다양한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 날 필요로 하는, 내가 일하러 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에스프레소, 카라멜마끼아또…. 커피 이름들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생소한 커피 이름들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어려워하시기도 하죠. 그래도 저는 옛날에 레스토랑을 운영해 본 적이 있어서 덜한 편이에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덕도 있고(웃음).

  ‘실버’라고 해서 어르신들만 계실 줄 알았는데 젊은 손님들도 꽤 보이네요. 젊은이들이 실버카페를 많이 찾나요?
  학생들이 와도 괜찮은데 카페 안에 어르신들이 많으니까 그냥 나가는 학생들도 많고 그래요. 카페 수익이 노인복지기금으로 쓰이다 보니 젊은 학생들이 와서 한 잔이라도 사 주면 참 고맙습니다. 다른 데서 먹는 것 보다는 어르신들을 위해서 실버카페를 많이 찾아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실버 바리스타님에게 ‘실버카페’란?
  나에게 실버카페란 ‘직업’이다? 너무 당연한 건가(웃음). 요즘 보통 60세만 넘으면 밖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나이가 있다고 일을 못하는 건 아닌데 인정을 안 해 주는 거죠. 그런 면에서 내게 직업이 돼주고 보람을 느끼게 해준 실버카페가 참 좋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