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드라마-SBS드라마 '발리에서 생긴일'

487 TV를 보다

2004-03-15     덕성여대 기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현실과는 다른 삶의 이야기이다. 특히 드라마를 볼 때 사람들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고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한 대리 만족을 느끼곤 한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즘 세상에 찾기 힘들어진 구멍가게나 낡은 헌 신처럼 그 의미를 퇴색해가는 사랑의 존재를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통해서라도 간접적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남녀간의 사랑이든 가족간의 사랑이든 사랑이라는 것이 아직도 우리에게 존재한다고 말이다. 때문에 모든 드라마에는 그 장르를 마다하고 사랑이야기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보다 감각적이며 새로운 것, 그리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요즘 세대에 발맞추다 보면 사랑 역시 평범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다. 
 얼마 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은 남녀 4명이 얽혀 있는 애절하고도 절실한 사랑의 결말을 죽음으로 맺었다. 얼마나 사랑하면 연인과 라이벌인 남자를 죽이고 자신도 권총 자살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죽을 만큼 사랑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결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치 죽음이 아니면 숭고한 사랑을 증명하기 어려운 듯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던 드라마들은 사랑 끝에 죽음이라는 결말을 맺기 바빴다. 너무 사랑해서 아내가 죽은 뒤 정신적 충격으로 뒤따라 죽고, 정말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살하여 안구를 기증하고, 절실하게 사랑해서 상대방을 죽이고 권총 자살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연 웬만해서는 쉽게 감동을 받지도, 공감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확인 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일까? 사실 요즘은 이렇게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죽음이라는 결말 앞에 무덤덤해진 나머지 '또 죽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오히려 대머리 애인의 콧털을 뽑아주며 "콧털은 이렇게 많은데 머리카락은 왜 없을까?" 하고 안타까워하는 대사 한마디에서 그 무엇보다 진실한 사랑이 느껴지기도 하니 말이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