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충돌, 영화로 본 허와 실

2014-12-08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오늘의 영화 <아마겟돈(Armageddon, 1998)> 
  영화 <아마겟돈>은 미국 텍사스주 크기 만한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위기 상황 속에서 시작된다. 만약 이 소행성을 막지 못하면 행성과 지구는 충돌하여 지구 상에는 살아있는 생물체가 단 하나도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결책을 내놓게 되는데 바로 핵을 이용하는 것이다. 핵폭탄을 싣고 소행성으로 가 굴착기로 깊은 곳을 파낸 다음 핵탄두를 묻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폭파하면 소행성은 두 개로 쪼개지고 지구 양쪽으로 빗겨가 지구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 나온 해결책은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질문과 답변을 통해 알아봤다.


 

 

 

  ‘과학의 눈’으로 본 공상과학(SF)는 늘 허점투성이다. 작가와 감독은 드라마를 위한 극적인 장치에 더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SF에서 옥에 티를 찾는 일은 그래서 묘미가 있다. 이제는 클래식이 된 SF 재난영화 <아마겟돈>에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Q. 그렇게 큰 소행성도 있을 수 있는가
A. 문제의 천체는 텍사스주(대각선거리 1400km) 만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소행성 중에 제일 몸집이 큰 세레스(Ceres)의 적도지름은 970km. 그런데 2006년 국제천문연맹은 소행성으로 알려진 세레스와 마지막 행성인 명왕성을 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재분류했다. 영화에 나오는 이 천체는 명왕성보다는 작고 마케마케(Makemake)와 크기가 비슷한 왜소행성이다. 왜소행성은 태양을 공전하며 중력이 그 형태를 결정짓지만 주변 천체들에 대해 행성들만큼은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답 : 없다

Q. 소행성이 내뿜는 기체의 정체는 무엇인가
A. 최근에는 꼬리달린 소행성이 발견되는가 하면 궤도는 혜성이 분명한데 표면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박쥐’ 같은 소행성도 있다. 영화에서 시도 때도 없이 제트를 뿜어대는 이 천체의 무늬는 혜성이 맞지만 철산염(ferrite)이 주성분이라는 영화 속 설정과는 정면 배치된다. 혜성은 금속이 아닌 먼지와 얼음, 휘발성 기체가 주를 이룬다. 답 : 혜성의 특성을 띤 왜소행성    

Q. 영화에서처럼 충돌 18일 전에 눈으로 소행성을 확인할 수 있는가
A. 이 천체는 18일 동안 평균시속 2만 2천마일(10km/s)의 속도로 지구에 접근한다. 그렇다면 발견 시점에는 지구-달거리의 40배, 즉 세레스보다 30배나 가까운 지점을 통과했어야 맞다. 밝기는 거리제곱에 반비례하니까 당시 이 천체 세레스의 900배, 곧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보다도 밝고 누구든 맨눈으로 볼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충돌 2~3주 전에야 발견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답 : 더 일찍 발견됐어야 한다.  

Q. 영화 속 소행성과 충돌 시 위력은 어느 정도인가
A. 중생대 백악기 말인 6500만 년 전 공룡들을 절멸시킨 소행성은 10km급. 이 소행성이 초속 10km의 속도로 지구와 충돌할 때 7천만 메가톤(Mt)이 방출된다. 핵탄두 1기당 50메가톤이라고 가정하면 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탄두 1백 4십만 개가 필요하다. 철 밀도에 해당하는 7kg/m3를 적용하면 영화 속의 천체는 백악기에 떨어진 것보다 9백 5십만 배 무겁고, 쪼개지지 않은 채 지구와 충돌할 경우, 50메가톤급 핵폭탄 13조 4천억 개의 위력과 맞먹는다. 답 : 그렇지 않다.

Q. 작은 조각이 유성처럼 떨어질 수 있는가
A. 가능성은 낮지만 천체가 혜성과 충돌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영화에서처럼 천체가 폭발하면서 접근한다면 가끔 몇 개씩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나기처럼 세게 퍼부어야 하고 처음에는 작은 파편이, 뒤이어 커다란 조각들이 쏟아져야 맞다. 폭탄이 터질 때처럼. 그러나 작은 파편들은 땅에 닿기 전에 녹거나 타서 없어진다.  답 : 그럴 수 있다.

Q. 실제 소행성의 표면에도 날카롭게 튀어나온  것들이 있는가
A. 행성과 왜소행성이 만들어질 때 내부 열원에 의해 안쪽이 녹아 무거운 금속은 중심에 가라앉고 가벼운 암석은 지각을 이뤄 전체적으로는 구나 타원체가 된다. <아마겟돈>의 소행성은 1천km가 넘는 왜소행성이라 영화에서처럼 울퉁불퉁하지 않은 구나 타원체여야 맞다.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영화에 나오는 긴 막대 모양의 결정체는 진공에서, 게다가 철이 주성분인 곳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다. 답 : 맞지 않다.

Q. 천체를 둘로 쪼개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A. 영화에서는 지구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문제의 천체를 800피트(240m)만큼 파 내려가 폭탄을 매설한다. 240m는 1천 4백km의 1/5800, 농구공에 비하면 머리카락 두께에 불과하다. 여기엔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이 천체 내부에 거대한 틈이 있다면, 그리고 그 틈이 중심을 관통한다면 반으로 쪼갤 수 있다. 답 : 불가능하다.

 

Q. 천체를 폭발시켜 충돌을 피하는 것이 가능한가
A. 천체에 거대한 틈이 있고 그 틈이 중심을 관통한다고 치자. 미션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지구반지름은 6천 4백km. 충돌을 막으려면 천체를 둘로 쪼개 운동방향에 대해 수직으로 시속 1천 6백km의 속도만큼 밀어내면 된다. 이것은 제트여객기의 두 배에 해당하며 그 몸집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 없는 대안임을 알 수 있다. 명왕성보다 큰 놈을 둘로 쪼개 보잉 747의 두 배 속도로 움직인다? 핵탄두 몇 개로는 어림없다. 답 : 피할 수 없다.

Q. 소행성의 표면 위를 제대로 걸을 수 있는가
A. 이 천체의 평균 밀도가 물의 7배(7kg/m3)면 거기서 우리가 느끼는 중력은 지구의 0.38배, 화성과 같다. 지구에서 60kg인 사람은 달에서 10kg, 이 천체에서는 23kg이 나간다. 0.38G(중력)를 가정할 경우 부르스 윌리스의 걸음걸이는 특별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답 : 그럴 수 있다.

에필로그
11월, 나사는 1994년부터 지난 20년간 지구에 떨어지거나 상층 대기에서 폭발한 소행성과 혜성의 충돌 기록을 공개했다. TNT 폭탄 5톤에서 1메가톤에 이르는 폭발이 556차례, 2주에 한 번 꼴로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어 12월 첫 주에는 2014 WU200, 2014 WX202라는 이름의 근지구소행성 2개가 지구를 스쳐 지나갔다. 걱정거리는 첼랴빈스크 운석에 해당하는 10~20m급 천체가 2천만 개로 추산되는데 발견된 것은 5백여 개에 불과하다는 것.

12월초, 영국 왕립천문학자인 마틴 리즈경,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즈, 아폴로 13호 선장 짐 러벨과 천체물리학자이면서 그룹 퀸의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 등은 2015년 6월 30일을 ‘소행성의 날’로 선포했다 그리고 ‘충돌’이 향후 수세기 안에 마주하게 될 인류의 가장 큰 위협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들은 근지구소행성 발견과 특성 연구를 현재 수준의 100배로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핵탄두 몇 개로 충돌을 막을 수는 없다. 코앞에 닥친 멸종을 모면하려면 순간적으로 방대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대안으로 오래, 적은 힘을 가해 궤도를 바꾸는 기술들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블랙리스트’를 확보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영화에서처럼 극단적인 선택에 운명을 걸지 않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