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캐리어에 담지 못한 꿈

2016-11-24     박시연(정치외교 1) 학우

  작년 이 맘 때쯤, 나는 대치동 학원가에 있었다. 대학 입시 논술 전형을 대비하기 위한 단기 특강을 듣기 위해 학교가 끝난 후부터 10시까지. 집에 도착하면 12시 정도가 됐고 그 후로는 수능 공부를 했다. 그 한 달이 학생 시절에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대치동 학원가에 입성한 지 사흘째되는 날이었을까. 한 가지 깨닫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원 건물에는 초등 어학원이 있어서 초등학생들이 많았는데 그 아이들 대다수가 메고 다니기 무거운 책가방 대신 흔히들 여행용으로 사용하는 캐리어(carrier) 가방을 끌고 다녔다. 그 아이들은 고등학교 3학년인 나보다도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학교를 다닌 12년 동안 학원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었던 나는 사교육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던 아이들과 밤 10시가 되면 학원 앞에 즐비하고 있던 학부모들의 차들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은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얼마 전 영재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에 11개의 학원을 다니는 여덟 살 세윤이가 나왔다. 학원에서의 긴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복습을 해야 하냐는 세윤이의 물음에 엄마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세윤이는 “엄마 그럼 나 언제 놀 수 있어?”라고 되묻는다. 아마 내가 대치동에서 봤던 아이들도 세윤이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지난 주 치러진 수능을 준비한 수많은 고학등학교 3학년들. 그 학생들은 어떤 꿈을 꿀까? 어렸을 때 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장래희망 칸에 무엇을 쓸지 힘든 고민을 했다. 그리고 대학 입시를 거쳐 새내기가 돼, 지도교수님과의 면담에서 진로에 대한 물음을 받았을 때 역시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게 뭔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를 위한 경쟁을 해보면서 어느새 나의 꿈과 장래희망은 대학이 됐고 원래의 꿈은 한 편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과연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던 초등학생 아이들은 꿈을 꿀까? 그 꿈은 성공을 바라는 부모들에 의해 만들어진 꿈은 아닐까? 만들어진 꿈을 자신의 꿈이라 믿으며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장에서 뛰어야 할 아이들이 무거운 책가방을 끌고 여러 학원을 뛰어다니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는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는 아이들보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놀이터 한 쪽에 던져놓고 친구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내다 해가 질 때쯤 흙투성이가 된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