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학술문예상 시 가작>

2017-11-27     정연주(국어국문 4)


  <대화>

  내가 그거 좋아하는 언니한테

  받은 것만 아녔어도 씨 진작에 팔았는데
  그래?
  어. 한 오만원 주고 샀다
  되게 중고였나보다, 5만원이면
  기종 뭐야?
  넥서스, 7인가 뭐시긴가

  케이스만 5만원주고 맞추셨댄다
  거의 애정을 산 셈인데
  그래서 못 팔잖애
  그 언니랑 연락하냐?
  번호는 있지
  번호만 있구.

  어떻게 만났어?
  너 알은 것처럼 알았지.
  어쩔 수 없는 거네, 야 원래 인터넷 인연이란게 다 그런 거야.


  <제 43회 학술문예상 시 가작 수상소감>
  최근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전에 학술문예상에 제출했던 시들 중 하나가 당선됐다는 소식은 늦은 저녁에 찾아왔습니다. 출근 1시간 전이었네요. 좋은 소식을 들었는데도 기쁘지 않았던 것은 아마 삶이 급작스레 한층 더 무거워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 이유로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해 지원한 세 작품 중 어느 것이 사람들에게 좋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제 것을 누군가가 좋아해준다니 감사할 일입니다.

  새삼스레 처음 시를 쓰던 날을 생각합니다. 그날 이후로 이렇다 할 시를 써본 적은 없었지만 그럴 듯한 단어를 찾아 매일 풍경을 짤막하게 생각하고 기록하는 버릇이 깊게 남았나 봅니다. 덕분에 이렇게 상금도 받게 됐습니다. 마음 깊이 사랑하게 해줘서, 시와 소설을 쓰는 것을 시작하게 해줘서 새삼 그 애한테 고맙다고 하고 싶습니다.

  모든 시가 그렇듯이 제 삶의 단면을 뚝 잘라 떼어내 남에게 보인다는 것이 힘들긴 합니다. 숨기고 감추기 급급했던 전의 시들과 달리 이번에는 최대한 숨기지 않고, 중의적으로 읽히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삶이 갖는 여러 모습 중 보편적이지 않을 법한 것들만 자극적인 어투로 써낸 것들을 출품한 것 같은데 좋아보였던가 봅니다. 의외입니다. 다행히도 여자로 태어난 덕분에 삶에는 아직도 글감으로 쓰일 다른 흉터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새로 남겨지기도 하고요.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는 갑니다. 근 반년을 좋아했던 배우가 좋아하는 대사를 어거지로 삼킵니다.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