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까페에서 운명을 외치다

현대인의 카운슬러, 점

2004-11-06     김민정 기자

 홍대 앞 어느 작은 카페 안, 이야기를 나누는 한 여학생의 태도가 사뭇 진지하다. "제가 이 사람을 계속 만나도 될까요?", "이번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데요..."와 같은 심상치 않은 질문이 쏟아지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대방은 이내 그녀의 운명을 재판한다. 그리고는 판결. 하루에도 수십 명의 운명이 드나드는 곳, 사주카페 안의 풍경이다.
 

 사실 요즘 시대에 누가 운명을 믿겠는가? 이미 신을 넘어선 과학과 온갖 법칙, 논리로 지배되는 오늘의 사회는 이제 웬만한 것들은 통계와 수치로 정확히 분석해 낼 수 있다. 하지만 미래만큼은 언제나 알 수 없는 얼굴로 불확실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국 '운명'을 찾게 된다. 이미 데카르트식 합리성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불확실한 것', '예측 불가능 한 것'들에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이 나라경기는 점점 악화되는 가운데 청년 실업이 40만을 넘어서고 각종 사건 사고가 넘쳐나는 요즘, 사람들은 그 불확실한 미래와 예측할 수 없는 변수에 더욱 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내 의지와 신념만으로 무엇을 이룬다는 것은 왠지 불안한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렇게 불안한 자신의 미래를 상담해줄 인생의 카운슬러로 '점'을 택하게 된다. 도심을 달리는 버스 좌석 뒤에는 어김없이 '사주'와 '운명'을 말하는 역술인의 광고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학가에는 어김없이 2~3개의 사주 카페가 존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실제로 우리학교 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점을 본 경험이 있는 학생은 91% 에 달했다. 물론 대개는 심심풀이 재미로 본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는 대답도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당장 눈앞에 닥친 취업이나 적성에 있어서도 자신 나름대로의 확고한 결단이 서지 않는 이상 '운명'이라는 유혹에 솔깃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취업지원실과 같은 전문기관과의 상담이나 적성검사를 통한 객관적인 평가만큼이나 사람들이 점술가에게서 듣는 조언은 큰 영향을 끼치고 된다. 11년 동안 사주카페에서 활동한 점술인 우주예언가(예명)는 "요즘 같은 때는 젊은 친구들이 취업이나 유학 등 진로에 관련하여 많이 질문을 한다"며 "위의 경우 확답은 못하지만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인생 흐름을 보고 조언을 해 주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진로뿐만 아니라 연애나 각종 대인관계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운명'의 힘을 빌리려는 사람들은 많다. 위의 경우에는 특별히 상담을 받거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기관이 더욱 부재한 만큼 '점'을 통해 그 문제를 표출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만들려 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생 이모양은 "주로 이성 문제가 잘 풀리지 않거나 대인관계가 좋지 않을 경우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상담을 받기도 한다"며 "점을 100% 믿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현실이 답답해서 찾게 된다"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서구 문화와는 달리 카운슬링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우리의 현실상 언제나 고민을 들어주고 나눌 상대는 또래 친구뿐이 없었다. 그것이 취업이나 적성과 같은 미래에 관한 고민이든 아니면 성격이나 대인관계에서 오는 개인적인 고민이든 그 질과 양에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원만한 해결책이나 그 방향성을 얻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럴 때 누군가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내 미래에, 혹은 답답하기만 한 내 현실에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말을 한다면 누구라도 믿고 싶고 따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모든 문제를 '점'에 의존하고 여기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 될 수 있다. 우리학교 교양학부 김미리혜 교수는 "우울할 때마다, 불안할 때마다 점을 치면 자신의 자존감이나 상황대처능력을 키울 기회를 잃고 근본적인 심리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심하게 악화될 수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우울과 불안을 제때 치료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우수한 상담 선생님의 객관적인 상담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는 '나' 자신과 그 환경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는 절망하고 또 때로는 희망한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뚜렷이 보이는 답은 없다. '운명'도 정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카네기의 말대로 운명이 나에게 레몬밖에 주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레몬주스를 만들고 또 팔아서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이것이 불확실한 내일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