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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한 증거가 필요해
2017년 09월 04일 (월) 16:21:43 나재연 정기자 -@duksung.ac.kr

  ‘덕질’은 우리에게 일상이 됐다. 과거에는 ‘빠순이’나 ‘오타쿠’ 등 부정적인 이미지였지만 요즘은 “나는 ○○덕이다”라며 자기소개를 할 만큼 덕질이 친근해졌다. 광고나 미디어, 일상대화에서도 ○○덕이라는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게 됐다. 덕질은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난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지식이나 능력이 높게 평가받아 대단한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심지어 덕질은 취업 시장에서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덕업일체(덕질이 곧 직업이 된 경우)’의 사례가 생겨나고, 열심히 덕질한 능력을 증명해 자신은 남들과 다른 인재라고 어필할 수 있게 됐다. 자기소개서에 덕질한 것을 기재하라는 항목이 생긴 회사도 있다. 기뻐하다가도 의문이 생겼다. 정말 열심히 덕질을 해오다가 마침 이를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

  덕질의 증거는 블로그, SNS, 스크랩 등이 될 수 있다. 만약 이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아 증명할 수단이 없다면? 증명이 안 된다. 취업 시장에서는 ‘덕질’이 아니라 ‘덕질에서 나온 그만의 장점’을 원하기 때문이다. 억울할 건 없다. 어차피 나 좋아서 한 덕질, 도움이 되면 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하지만 묘하게 차오르는 아쉬움이 사라지질 않는다. 분명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한 덕질은 아니지만 마음이 상한다.

  취업이 어려운 요즘, 무엇이든 스펙이 된다는 건 희소식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덕질은 더 이상 취미에 그칠 수 없게 됐다. 즐기는 것을 넘어 이제 덕질은 스펙으로서 의미를 갖추게 됐다. 일명 ‘덕질의 스펙화’다. 내 덕질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증거를 남겨야 하는 것이다. 왠지 덕질마저 즐기고 끝내는 것으론 부족해져버린 현실에 조금은 힘이 빠진다.

  덕질은 휴식의 일종이다. 덕질이 스펙이 되는 현상은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현생’에 지쳐 즐기는 취미가 또 다른 ‘현생’이 돼 버린 것이다. 나의 덕질을 스펙으로 만들기 위해 남들에게 보일 결과물을 만들다보면 ‘내가 좋아서 하던 일이 맞나’하는 의문이 들어 자괴감이 든다. 내 덕질을 평가요소로 만들어버리니 결과물을 생각지 않았던, 결과물이 없었던 지금까지의 덕질은 다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친 몸을 달래는 휴식마저 효율을 갖춰야 하니, 더 이상 휴식이 아니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일에 도움이 되는 ‘생산성 있는 휴식’을 장려하는 게 정말 긍정적인 일일까? 어쩌면 ‘덕질의 스펙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던 덕질이 더 이상 휴식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퇴색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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