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전환의 징후들
시대전환의 징후들
  • 김두환 사회학과 교수
  • 승인 2018.11.1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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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국이 있었다. 이는 당시 커다란 화제를 모으며 우리를 놀라게 했고 인공지능 기술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 보여줬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관련해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란 게 있다. 사람에게 쉬운 일이 인공지능에게는 어렵고, 인공지능에게 쉬운 일이 사람에게는 어렵다는 것이다.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는 한 기자가 알파고에게 로봇 팔을 만들어 주지 않은 이유를 묻자 현재 알파고에게는 바둑의 수를 계산하는 것보다 바둑돌을 원하는 자리에 내려놓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다. 이는 모라벡의 역설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다. 그런데 이 바둑 대국으로부터 2년 후인 지난 8월, 뉴욕타임즈는 댁틸(Dactyl)이라는 로봇 손이 개발됐다고 보도했다. 이 로봇 손은 정육면체를 능숙하게 움직여 원하는 면을 선택해 보여줄 수 있다. 댁틸이 보여준 손놀림은 100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도달할 수 있는 기술인데, 수천 개의 컴퓨터 칩을 이용한 가상실험(simulation)을 통해 단 이틀 만에 이를 달성했다고 보도됐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와 함께 수많은 무인공장이 등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예외는커녕 한국의 산업로봇 밀도는 2010년부터 압도적으로 세계 1위다. 몇 년 전 국내 굴지의 한 기업이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는 사업을 하는데 보도 자료를 내지 않은 적이 있다. 대개 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고용 창출로 인식되고, 이 때문에 중앙정부나 공장이 들어서는 지역의 지방정부, 주민들에게 환영받는다. 이에 한 경제학자가 해당 기업 임원에게 보도 자료를 내지 않은 이유를 묻자, 임원은 해당 투자 사업이 무인공장이기 때문에 고용을 창출하지 않아 보도 자료를 내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지만, 고용 창출은 없었던 것이다. 사실 고용 없는 성장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한국의 기업소득은 국민총소득의 증가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상승해왔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 이전인 1995년 국민총소득에서 16.6% 수준이던 기업소득 비율이 2011년에는 24.1%로 7.5% 포인트 증가했다. 이 기간의 국민총소득 규모가 막대하게 성장(1995년 427조 원 → 2011년 1,340조 원)한 것을 고려해보자. 만약 2011년 비율이 1995년과 같았다면 가계의 몫이었을 100조 원의 소득을 기업이 가져간 셈이다. 더구나 재벌 그룹의 계열사 100대 기업은 2013년 기준 한국 기업 총 순이익 중 59.6%를 가져갔지만, 이들이 고용한 임금노동자는 3.6%에 불과했다.

  알파고 사건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고조되며 이러한 생산시설의 자동화 이야기는 이제 진부해진 면까지 있다. 더구나 생산시설의 자동화는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계속돼 온 것으로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도 몇 번의 비약적 도약이 존재한다. 인공지능의 역사를 보면 그것은 대개 1936년 앨런 튜링(Alan Turing)의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출발한다. 말 그대로 컴퓨터, 즉 계산기의 시작이다. 이후 기억장치와 연산능력의 진화, 맞춤형 프로그램의 발달이 인공지능 발전에 대한 최근까지의 역사였다. 그러나 2014년 구글에서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을 도입하면서 이가 전기를 맞이한다. 이른바 인공지능이 모라벡의 역설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동화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면 그 이유는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가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두뇌를 기계로 대신할 방향을 궁리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자동화 테크놀로지는 헤겔을 포함해 노동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한 수많은 이론의 시효가 다했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한다. 이미 1930년 세계 경제 공황기에 케인즈는 100년 후의 세상을 그렇게 묘사했다. 어쩌면 우리는 노동이 아니라 여가와 자유, 그 선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역사적 시대의 초입에 당도했는지도 모른다. 이는 결코 과학기술의 진화와 발전을 멈추자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인류가 근대과학의 발달과 자본주의 산업화로 달성한 물질적 생산능력은 현재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 반성을 통해 인간의 새로운 사회적 삶을 상상할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인간의 노동을 주변화하는 생산기술의 등장은 역사적으로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활동이 소득을 올리는 노동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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