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 않을 자유를 찾는 여정, 탈코르셋
예쁘지 않을 자유를 찾는 여정, 탈코르셋
  • 나재연 기자
  • 승인 2019.03.19 0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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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억압하는 사회적 도구, 코르셋을 벗다

  A 씨는 약속에 자주 지각한다. 오랜 시간 화장하고 옷을 고르다 보면 이미 약속에 늦어 허둥지둥 택시를 타는 일도 허다하다. 긴 외출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선 A 씨는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장품들을 짓뭉갠 사진과 함께 ‘탈코르셋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게시글을 본다. A 씨는 그날따라 짧은 머리에 화장을 하지 않은 여성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 어느 날, A 씨는 외출준비 중 화장이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어 그날 화장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옷이 자신에게 잘 어울릴지 고민하지 않고 편안한 옷을 골라 입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열심히 기르고 관리했던 긴 머리를 잘랐다. A 씨는 그렇게 SNS 속 사람들처럼 ‘코르셋’을 하나씩 벗어갔다.
 

  여성을 숨 못 쉬게 옥죄는 현대판 코르셋
  ‘코르셋’은 중세시대 여성이 착용했던 배와 허리를 졸라매는 속옷이다. 당시 여성들은 미의 기준이었던 가는 허리를 추구하기 위해 코르셋으로 배와 허리를 비정상적으로 조여 각종 건강 문제에 시달렸다. 이후 코르셋은 근대를 거치며 사라졌지만, 사회에는 여전히 여성이 추구해야 하는 미의 잣대로 남아있다. 이에 여성들은 여성에게 요구된 외모의 기준, ‘코르셋’에 자신을 맞춰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에 부합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가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사회적 억압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러한 잣대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바로 ‘탈코르셋 운동’이다.

1968년 미스아메리카 대회 반대 시위에서 진행된 ‘자유의 쓰레기통’ 퍼포먼스

  탈코르셋 운동은 1968년, 미국의 ‘미스아메리카 경연대회’를 반대하는 시위가 그 전신이다. 당시 미스아메리카 대회 반대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은 ‘자유의 쓰레기통(freedom trash can)’을 두고 그 안에 브래지어, 하이힐, 화장품 등을 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는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미스아메리카 경연대회와 이를 조장하는 사회를 비판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탈코르셋 운동은 SNS를 통해서 빠르게 확산됐다. 우리대학 사회학과 김은정 교수(이하 김 교수)는 “예전부터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들에 대한 의문과 문제 제기는 산발적이지만 꾸준히 있어왔다”며 “그러나 최근 많은 여성이 여성에 대한 차별적 관행에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해서 이러한 관심을 나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탈코르셋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탈코르셋 운동 참여 여성들이 SNS에 올린 탈코르셋 인증 사진<출처/인스타그램 sny0111>
탈코르셋 운동 참여 여성들이 SNS에 올린 탈코르셋 인증 사진<출처/인스타그램 ________sena__xx__>

  여성에게 강요되는 꾸밈노동의 의무
  왜 여성의 꾸밈행위를 현대판 코르셋이라 칭하는 것일까? 이는 여성에게 꾸밈행위가 코르셋과 같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요되는 사회적 억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샤넬코리아 전국 백화점 매장 직원(이하 직원) 334명은 회사를 상대로 임금청구 소송을 냈다. 샤넬은 브랜드 정체성 관리를 위해 직원들에게 배포하는 자체 꾸밈 규칙인 ‘그루밍 가이드’가 있다. 직원들은 가이드에 따라 메이크업과 헤어, 복장을 9시 30분까지 갖춰야 해 사실상 강제 조기 출근을 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회사 측에 꾸밈노동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추가수당을 지급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는 비단 특정 기업의 사례만이 아니다. 여성은 사회생활을 위해 단정히 꾸민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하며, 이러한 인식은 ‘꾸밈노동’을 정당화한다. 이로 인해 여성은 직장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도 화장을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할 의무가 주어진다. 여성의 꾸밈행위가 일에 대한 전문성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꾸밈노동의 부담을 안아야 하는 것이다.


  코르셋과 함께 끌어안은 부담들
  코르셋을 유지하는 것은 여성에게 수많은 부담을 준다.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비정상적으로 과도한 다이어트, 성형수술, 화장과 불편한 옷차림 등은 여성을 신체적으로 억압한다. 이에 더해 자신의 모습을 이상적 외모 기준에 맞춰가며 여성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코르셋으로 인해 신체적·정서적 억압에 시달리는 것이다. 인천여성의전화 교육팀장 말랑 활동가(이하 말랑 활동가)는 코르셋으로 인해 여성이 많은 문제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랑 활동가는 “코르셋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결국 여성의 몸을 억압하고 통제한다”며 “이는 가장 직접적으로 여성의 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은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을 따를수록 우울증, 좌절감을 경험하고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며 “이러한 정서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남성의 인정을 갈구하며 남성에게 종속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꾸밈행위로 인한 지출은 여성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을 준다. 말랑 활동가는 “코르셋을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 것도 문제다”며 “여성은 일하기 위해 꾸밈노동을 강요받아 꾸며야 하고, 꾸미는 데는 돈이 들기 때문에 남성보다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자기만족과 탈코르셋 사이의 갈등
  현재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다. 사회적 억압에 의한 것이 아닌 자기만족을 위해 꾸밈행위를 하는 것은 코르셋이 아니라는 주장 때문이다. 이들은 꾸미고 싶은 여성에게 꾸밀 자유를 앗아가는 것이 ‘역코르셋’이 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말랑 활동가는 “여성이 꾸밀 자유가 진정한 자유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꾸미지 않을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며 “꾸밀 자유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꾸밈에 대한 강요는 문화화·제도화됐다”며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의 꾸밈에 대한 자기만족과 자유가 진정한 자유였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성찰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유튜버들의 탈코르셋 선언이 주목을 받고 있다. 뷰티 유튜브를 운영하던 ‘배리나’, ‘Daily Room 우뇌’, ‘밤비걸’ 등 여러 유튜버가 뷰티 컨텐츠를 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튜버 배리나는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화장을 지우고 안경을 쓴 얼굴로 웃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배리나는 유튜브를 통해 “앞으로 메이크업 영상을 점점 줄여나가고, 꾸미지 않은 본연의 모습으로 촬영도 많이 하려 한다”고 전했다.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 ‘미미’는 갖고 있는 화장품을 으깨 슬라임을 만드는 영상을 올려 탈코르셋 인증을 하기도 했다. 미미는 유튜브를 통해 “여학생들이 초·중·고등학교에서 화장을 안 하면 따돌림을 받기 때문에 억지로 화장을 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자기만족이라 느끼면서 했던 화장과 긴 머리, 써클렌즈가 여학생들의 코르셋이 됐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어 탈코르셋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유튜버 배리나의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 영상에서 배리나가 화장을 지우고 안경을 쓴 후 웃고 있다.<캡처/youtube 배리나 Lina bae>
유튜버 미미의 ‘화장품으로 슬라임 만들기 탈코르셋_인증’영상에서 화장품을 으깨 슬라임을 만들고 있다.<캡처/youtube MiMi ASMR>

  여러 논쟁을 일으키는 코르셋 판별
  지난해 SNS에서 탈코르셋 운동을 주제로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다. 피부를 관리하기 위해 선크림을 바르거나, 필요 이상으로 세세한 세안을 강조하는 것 역시 코르셋이라는 지적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네티즌은 탈코르셋 운동이 급격히 확산되며 그 의미가 곡해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말랑 활동가는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주입한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이 작은 취향이나 몸짓까지도 되돌아보고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만 이러한 논의가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사적인 아이디어가 공론에 오르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여성들이 무엇이 코르셋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페미니즘적으로 건강한 것이라고 본다”며 “무엇이 정답인지를 찾아 합의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다면 더 많은 것을 성찰해볼 수 있는 좋은 현상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여성성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회로
  탈코르셋 운동은 사회가 제시한 여성의 이미지 밖에 있는 존재도 여성이라는 의미를 전달해 여성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고자 한다. 김 교수는 “탈코르셋 운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성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다”며 “다양한 모습의 여성성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말랑 활동가는 탈코르셋 운동이 여성해방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가장 근본적인 움직임이다”며 “이가 더 많은 여성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는 운동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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