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국의 상징성과 천상열차분야지도
조선 개국의 상징성과 천상열차분야지도
  • 이용복 서울교육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0.05.2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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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에게 하늘은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천재지변을 인간의 영역으로 만들기 위해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해 규칙을 찾고 이를 예측해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했다. 이로 인해 발달한 학문이 천문학이다. 선사시대부터 끊이지 않던 하늘에 대한 관심은 천체 관측 기구와 천문학의 발달로 이어졌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우리 전통 천문학을 꽃피웠다. 조선의 별자리를 담은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대해 알아보자.

 

  동서고금 모든 문화권에서 문명이 시작하며 나타난 과학 활동 중 하나가 태양과 달을 포함한 천체 운행의 원리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조상들은 이를 이용해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명확하게 정하고 인간 생활의 규율을 바로잡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고대 선사시대 이전부터 천체를 관측하거나 별에 대한 특별한 종교적 신앙을 가졌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고인돌 덮개석에 별자리를 새겨 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전통이 이어져 고구려 고분 내부의 벽화에도 별과 별자리를 그려 넣었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면서 가장 먼저 수행한 국정 과제는 동요하는 민심을 바로잡고 개국의 정당성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고려 말 사회·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을 바로잡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성리학을 새로운 통치 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은 천명(天命)사상을 백성에게 알리고자 했다. 따라서 개국의 당위성을 부여할 수단으로 전통적으로 내려온 우리 하늘의 별자리를 석판에 새긴 상징물을 만들기로 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우리 별자리의 원본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보다 앞서 만든 별자리 석판으로는 중국이 남송시대인 1247년 제작한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가 있었으나, 이를 그대로 옮기는 것은 조선 개국의 정당성을 주창하는 데 적절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대로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별자리가 필요했다. 때마침 고구려 별자리 인본을 바친 한 백성이 있었다. 태조 4년, 그 인본을 바탕으로 석판에 새긴 것이 국보 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다.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모사한 모습입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모사한 모습입니다. <출처/지식백과>

 

  명칭도 중국의 것과 전혀 다르다. 중국은 단순하게 ‘천문도’라 부른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독특한 우리만의 생각이 담겨있다. 천상(天象)이란 하늘에 있는 모든 천체와 그들이 운행하는 현상을 밝힌다는 내용이다. 열차(列次)는 하늘의 모든 별자리를 순서에 따라 배열하고 펼쳐 놓았다는 뜻이다. 분야(分野)는 지상의 여러 나라가 국경과 영역이 정해져 있듯이 하늘도 여러 부분으로 나눴다는 의미다. 지도(之圖)는 종합적인 뜻을 가진 그림이라는 말이다. 이렇듯 별자리판의 이름조차도 여러 의미를 담아 지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갖는 상징성은 대단히 크다. 별자리를 새긴 목적을 알면 별자리판의 중요성이 더 명확해진다.


  첫째, 조선이 하늘의 뜻인 천명으로 개국했음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함이다. 힘으로 찬탈한 정권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둘째, 성리학의 근본인 경천근민(敬天勤民) 사상을 다짐한다. 하늘의 뜻을 공경하고 백성을 보살피는 일에 전념하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셋째, 규칙적인 천상의 움직임을 수시로 관측해 때와 시를 받아 백성들에게 알려 생활의 규칙을 정하겠다는 관상수시(觀象授時)의 생각이다.


  넷째, 상시 하늘을 관측해 각종 천문 현상을 살펴 하늘의 의지, 천심을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하늘의 뜻을 어김없이 받들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별자리판은 당시 통치 이념의 설계자이자 성리학자였던 권근의 주도하에 제작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에 직접 참여한 12명 중 가장 많이 이바지한 3인은 권근, 류방택, 설경수다. 권근은 진행 책임을 맡았고, 류방택은 천문학자로 별자리 위치와 계절에 따른 별자리 운행을 계산했다. 설경수는 천문도의 모든 글자를 쓴 학자다.


  이 내용만 본다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성리학자와 천문학자 중심으로 상징성만 강조해 만든 상징물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자세하게 연구해 보면 과학적 지식을 바탕에 두고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수록한 내용을 알아본다. 천문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별자리 그림 부분인 천문도와 이의 해설문인 도해(圖解) 부분이다.
 

  천문도는 전통적인 중국의 우주관인 삼원이십팔수(三垣二十八宿)에 따라 하늘을 구분해 총 1,467개의 별이 새겨져 있다. 원반형 천문도 중심은 천구의 북극이다. 중심에 있는 별자리가 자미원으로 하늘의 황제가 거처하는 곳이다. 주위의 태미원은 황제의 신하가 사는 곳, 천시원은 백성이 사는 곳이다. 방사선 모양으로 하늘을 28개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를 이십팔수라 한다. 천문도 안에는 4개의 원이 그려져 있다. 중앙의 작은 원은 내규로 한양에서 일 년 내내 볼 수 있는 주극성 영역이다. 내규 밖으로 서로 엇갈린 두 개의 원은 하늘의 적도와 태양이 일 년 동안 운행하는 황도다. 황도 위를 운행하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계절을 알 수 있다. 가장자리 원은 외규로 조선의 한양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별의 한계를 표시한 것이다.
 

  도해의 중심 내용은 24절기 날짜에 따라 초저녁과 새벽에 남중하는 별자리를 계산해 표로 만들었다. 이를 계산한 사람은 류방택이다. 하늘의 세계와 땅의 세계를 대비하기 위해 12개의 영역을 하늘의 영역과 땅의 영역으로 지명과 함께 열거했다. 또 28수의 중심이 되는 별, 수거성의 동서방향 각도인 수거도 값과 북극까지의 각도인 거극도 값을 표시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의 별의 위치를 표시하는 방법과 거의 같다. 당시 조선 유학자들이 알고 있었던 우주 모습인 우주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이는 서양의 지구중심설과 비슷한 우주관의 모습이다.
 

  도해의 아랫부분에는 천문도 제작에 이바지한 12명을 직책과 함께 정확하게 기록했다. 천문도를 제작한 태조의 의지와 목표를 알리고 한 백성이 천문도의 인본을 바친 계기와 원본이 전란 중에 강물에 빠진 고구려 천문도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천문도가 고구려 시대 이전부터 내려오던 우리 고유의 것임을 알 수 있다.

  도설에서 특이한 점은 하늘을 12개 영역으로 구분하면서 서양의 황도12궁을 병기한 것이다. 당시 중국의 천문도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어떠한 경로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이미 서양과의 학문 교류가 있었다는 증빙이기도 하다.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단순히 전통 천문학의 상징물로만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제작 당시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을 뿐 아니라 천문 현상과 관련해 우리 조상이 이룩한 중요한 과학적 내용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대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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