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이 먹기
진정한 나이 먹기
  • 조수연(정치외교 2) 학우
  • 승인 2021.03.0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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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에는 하루라도 빨리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었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이라는 말을 믿고 떡국을 두 그릇이나 먹을 정도로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유치원 때는 실내화 가방을 준비 하며 초등학교 입학식을 고대했고 초 등학생 때는 교복을 입고 다니는 중· 고등학생 언니들을 동경했다. 고등학생 때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며 들떴고 친구들과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열했다. 하지만 성인인 지금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부담스럽다.

  현재 내 나이인 21살은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아직 새파랗게 어린 나이지만, 여기서 더 나이가 드는 게 싫다. 20살에는 대학을 가야 하고 20대 중후반에는 취직하길 바란다. 서른을 넘기면 독립한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나이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이 크다. 사회에서 제시한 ‘정상적인’ 생애주기를 따라가지 못하면 실패자 취급을 받곤 한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없다고 말한다. 물론 다음 기회가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19살이 지나고 나서야 수 능이 전부가 아니고 N수를 해도 뒤처지는 게 아님을 안 것처럼 당장은 다가오는 취업시장에서 밀려날까 두렵다. 이런 불안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패배감을 느끼게 하고 무력감에 휩싸이게 한다.

  그러다 최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꽤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시간과 비교했을 때 나는 도망치고 싶었던 상황에 맞섰고,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싫었던 내 모습이 바뀔 수 있는 건 나이를 먹어야만, 삶이 흘러가야만 알 수 있다. 내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건 나이를 먹는 것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해줬다. 내가 겪은 다양한 경험들이 나를 과거와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1년이라고 해서 쓸모없는 1년이 아니다. 자격증을 따거나 새로운 스펙을 쌓지 못했더라도 나는 한 해 동안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한 살씩 먹을수록 내가 무엇을 성취했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이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 진정한 나이를 먹는 법이리라.

  그리고 이왕 나이를 먹을 것이라면 나잇값 하는 어른이고 싶다. 영원히 어린 채 남아 있고 싶다는 미적지근한 태도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태도의 변화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게 나이라는 말처럼 성인이 되기는 쉽지만, 어른이 되는 건 어렵다. 나는 이제 나이를 먹는 것이 거북하지 않다. 나이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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