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국회는 이제 그만, ‘일하는 국회법’
나태국회는 이제 그만, ‘일하는 국회법’
  • 정해인 기자
  • 승인 2021.03.2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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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작용’ 의미, 그러나 페널티 도입 조항은 삭제해

  20대 국회는 국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겠다는 당선 당시의 각오와는 반대로 ‘동물국회’라는 오명과 함께 막을 내렸다.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적 혼란이 심해지고 여야의 대치가 치열해지며 국회는 자연스레 민생 현안과 멀어졌다. 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피해로 돌아왔다. 20대 국회의 과오를 만회하겠다며 ‘일하는 국회법’을 내세운 21대 국회, 과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입법부다운 입법부로 거듭날 수 있을까?

 

  ‘일하는 국회법’
  21대 국회서 출항

  더불어민주당이 제출한 국회법 개정안, 이른바 ‘일하는 국회법’이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이달 23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해당 법안은 여야 간 갈등의 장으로 변했던 20대 국회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국회의 자정 시도라는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선거 공약과 발의 당시 강조했던 몇몇 내용을 논의 과정에서 삭제하거나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의 골자는 상시국회 체제로 전환하고 회의 불참석 의원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논의 전에 비해 명단 공개 범위가 줄었고 무엇보다 불참석 의원에 대한 세비 삭감 내용이 빠졌다.

  국회의원의 회의 참가 법제화 논의는 그동안 대한민국 국회 역사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다. 2005년부터 시작해 ‘일하는 국회법’이라는 이름의 개정안들이 여럿 발의됐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모두 사라졌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률 개정안들이 몇 건이나 발의됐다. 대표적으로 문희상 전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이 있다. 해당 개정안에는 상시국회 체제와 회의에 결석한 의원에 실제 불이익을 적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결국 임기 내에 통과하는 데 실패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당초 패스트트랙 디데이로 정한 지난 2019년 5월 25일부터 30일 새벽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과정까지 각종 몸싸움이 일어났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당초 패스트트랙 디데이로 정한 지난 2019년 5월 25일부터 30일 새벽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과정까지 각종 몸싸움이 일어났다.<출처/경향신문>

 

  야당의 여당 견제,
  인질은 민생 현안?

  SBS 이슈취재팀이 총선 직후 국회의원 300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회의 출석률이 낮으면 세비 깎는 방안에 대해’ 145명이 찬성했다. 찬성한 의원 중 71%가 현재 합당된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 시민당, 28%가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 소속이다.

  정당 간 찬성률의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은 특정 정당의 정치색 때문이라기보다는 야당의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역사에서 회의 불참석은 여당에 대한 야당의 가장 대표적인 전략 무기다. 권력에서 밀려난 소수정당 또는 야당이 국회 파행을 협상 도구로 사용한다. 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통합민주당도 야당 시절 회의 불참석 의원에 대한 세비 삭감을 반대했다. 2008년 18대 국회에서 여당인 한나라당 초선의원 33명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내세우며 세비의 일부를 모아 기부했는데, 이를 두고 당시 장외투쟁 중이던 통합민주당에서는 ‘정치적 쇼’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정당정치는 국회 개원이 의견을 펼치기보다 소속당의 의견을 대변하는 정당 중심의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여당에 대항하는 취지로 국회 결석률이 높게 나타난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국민의힘당 주호영 원내대표 모두 야당의 보이콧이 의원 출석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SBS의 조사 결과 과반수에 가까운 인원이 불출석 의원에 대한 세비 삭감에 찬성했다.
SBS의 조사 결과 과반수에 가까운 인원이 불출석 의원에 대한 세비 삭감에 찬성했다.<출처/SBS>
불출석 위원에 대한 세비 삭감 찬성 비율은 정당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불출석 위원에 대한 세비 삭감 찬성 비율은 정당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출처/SBS>

 

  파업도 임금 받으면서 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2016년 5월 30일부터 2020년 4월 20일까지 20대 국회의 국회 회의록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016년을 제외한 나머지 연도에는 회의 시간이 하루 평균 2시간을 넘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 1인당 평균 회의 시간은 하루에 1시간 35분이었다. 법안 처리율은 37.8%로 대한민국 국회 사상 역대 최저 기록이다.

  낮은 법안 처리율에 반해 정부 견제 회의에는 고강도의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대 국회 회의 별 평균 회의 시간을 분석해보면 국정감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행정부 감시와 관련된 회의는 평균 4시간 이상 진행했으나, 입법 활동과 가장 밀접한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 소위원회의 평균 회의 시간은 2시간 45분에 그쳤다.

  20대 국회 하반기를 이끌었던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20대 국회는 야누스의 얼굴이다”며 “전반기에는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로 역사적으로 길이 남겠지만 후반기는 탄핵 이후의 제도화에 실패한 국회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의원의 업무가 회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법안 연구나 지역구 업무에 할애한 시간은 위 분석 결과에 반영할 수 없다. 그러나 국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 입법인 만큼 국민에게 공개된 공론장에서의 법안 논의 활동이 중요히 다뤄질 수밖에 없다.

 

  무노동 유임금 허락 않는
  외국 국회법

  외국의 경우 입법 활동 참여에 불성실한 의원에게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스위스는 회의 참석 시 의원에게 440스위스프랑을 지급해 금전적 유인을 구축했고, 독일 하원의원은 회의에 불참석 시 100유로를, 사전 허가 없는 불참의 경우에는 그 두 배를 지불해야 한다. 호주와 스페인은 제명이나 권한을 박탈하는 불이익을 적용한다.

  미국은 상·하원 의원 관계없이 회의에 참석할 의무가 있다. 결석한 의원에 대해서는 상원 표결을 진행한 뒤 정족수가 충당되지 않으면 해당 의원을 체포해 강제 출석 조치할 수 있다. 프랑스는 출석률이 50% 이하인 상원의 보조금을 삭감하는 등 금전적 제재를 가한다.

 

  사라진 세비 삭감 조항
  강제 회의 효과 볼 수 있나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세비 삭감 등 페널티를 도입하기보다 강제 회의에 초점을 맞췄다. 개정안에 따르면 국회는 23일부터 매월 2회 전체회의와 3회 이상의 소위원회를 의무적으로 개최해야 한다. 현행 국회법은 100일 동안의 정기국회를 열고, △2월 △4월 △6월 △8월에는 임시국회를 열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개정안은 추가로 3월과 5월에 개회하도록 하는데, 사실상 1월과 7월을 제외하고는 매달 국회가 열린다.

  현행법을 통해서도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 1/4 이상의 요청으로 임시국회를 열 수 있다. 그리고 관행상 3월과 5월에 자주 개회하는데,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이 두 달에 의무적으로 임시국회를 열기 때문에 향후 임시국회가 더 자주 열리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총선 이전 더불어민주당은 회의 불참석 의원에 대한 세비 삭감안을 제시했었다. △불출석률 10~20%인 경우에는 세비 10% △20~30%인 경우 세비 20% △30~40%인 경우 세비 30%를 삭감한다는 구체적인 수치도 밝혔으나 해당 내용은 초안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일하는 국회 추진단’ 단장을 맡았던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좋으나, 결석에 대한 페널티를 우려해 아예 회의를 잡지 않는 ‘식물 국회’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그대로 유지한 채 강제 회의를 하는 것이 실효성 있는 방안일지는 의문이다. 회의를 많이 열어도 여야의 협력이 없으면 동물국회와 식물국회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각 정당의 의견 협치와 설득이 먼저 필요한 실정이다.

  시민사회단체 참여연대는 지난 2월 임시국회의 각 상임위원 출석률을 발표하며 “일하는 국회는 단순히 회의를 많이 하는 국회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민생 법안을 제대로 논의해 처리하고, 행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을 때 ‘일하는 국회’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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