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짓으로 감정의 온기를 전하다
손짓으로 감정의 온기를 전하다
  • 전유진 기자
  • 승인 2021.05.2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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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한다. 수많은 정체성 중에는 장애라는 정체성도 있다. 농인은 그들의 언어인 수화 언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이 수어를 더 넓은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예술로 표현하는 이가 있다. ‘지후트리’로 활동하는 박지후 수화 아티스트를 만났다.

  Q. ‘수화 아티스트’라는 생소한 일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이 충격으로 면역력이 약해지신 어머니가 음악을 듣다가 한쪽 청력을 상실하셨어요. 몇 년 후엔 삼촌이 화재사고로 팔 한쪽을 잃었어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장애를 갖게 된 거죠. 그제서야 장애가 제 피부에 와닿았어요. 이때 가족에게 받은 사랑을 장애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수화 아티스트는 수화 언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고 퍼포먼스 활동을 해요. 농인의 제1언어인 수화 언어를 좀 더 감각적이며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언어로 다가가게 하고 싶었어요.

 

  Q. 수어 예술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수많은 사람이 보다 안전하고 윤택하게 살려면 규칙이 필요해요. 그래서 법을 만들었고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건데 여기서 차별이 생기는 거죠. ‘장애인이니까 못하겠지’라는 선입견을 없애고 그 사람을 오롯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입견을 전부 없앨 순 없겠지만 조금씩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래서 여러 가지 콘텐츠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고요.

  저는 이 언어의 아름다움을 따지는 것이 아닌, 장애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어요. 장애는 그냥 하나의 정체성일 뿐이에요.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도와줘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장애인들은 자신을 항상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보거나 안타까움을 담은 시선을 불편해하더라고요.

 

  Q. 수화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인가요?

  2016년에 전시회를 했는데, 그때 농인이 찾아왔어요. 당시에는 농인 단체에 먼저 찾아가 보려는 생각을 안 했어요. 기반을 좀 더 다지고 자리를 잡은 후에 그들을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농인이 먼저 찾아온 거예요. 제가 본인의 언어인 수어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을 보고 응원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때 엄청난 감동을 받았어요.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이 제게 와서 수화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해 주는데,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나서서 더 많은 농인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SNS가 더 발달하면서 농인들의 개인적인 연락도 많이 왔어요. 저는 농인들의 관심을 받을 때 정말 기뻐요. 연락을 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냈겠어요. 저도 그 용기에 또 다른 용기를 얻어 대답하는 거죠.

 

  Q. 수화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요?

  초반에는 선뜻 내가 수화 아티스트라는 말을 하지 못했어요. ‘수화 아티스트가 뭐야?’ 하는 질문에 스스로를 가뒀어요. 사람들의 의아함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한 거죠. 그런데 ‘내가 책임감 갖고 지은 명칭을 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이후로는 사람들이 물어봤을 때 기꺼이 설명해 줘요. 수화가 그저 한국어를 기반에 두는 대화 수단이 아닌, 하나의 언어인 ‘수어’고 수화 아티스트는 그걸 예술로 표현하는 거라고요.

  Q. 일러스트레이터, 타투이스트, 퍼포머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한 이유가 있나요?

  수화 언어라는 주체는 그대로 두고 이를 돋보이게 하는 재료들을 계속 찾았어요. 일러스트는 그림이니 전시회 등을 통해 보여 주고, 퍼포먼스는 시각 언어인 수화처럼 손으로 움직이며 감정을 전달하는 거죠. 타투를 시작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새겨 주고 싶어서예요. 자기 삶에 제일 맞닿아 있는 것을 수화 언어로 표현해 도안을 만들고, 그걸 원하는 부위에 새겨요. 이렇게 수화 언어에 여러 옷을 입히면 재밌는 문화를 가진 언어라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해요.

 

  Q. 작품을 작업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수화는 농인이 쓰는 하나의 언어잖아요. 남들에게 이 언어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임을 알려야 하기에 가볍게 다가가지 않으려고 주의해요.

  사람들이 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를 수집하고 그것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일상에서 계속 스며들 수 있도록 작업해요.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이런 문화도 있으니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의 형태로 먼저 다가가려고 해요. 저는 장애인 가족이 있어 그들과 맞닿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만나지 않을 확률이 커요. 그만큼 장애라는 개념과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않아요. 내가 지금 건강하고, 내 가족 혹은 주변에 장애인이 없으니까요. 근데 우리나라 장애인 통계를 봤을 때 후천적 장애인이 90% 이상이에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고나 질병 등에 의해 기능적으로 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항상 잠재적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정책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장애인 관련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은 보통 비장애인인데, 장애인의 어려움을 통해 나온 건의를 불편해해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원하는 제도가 아닌 자신들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요. 장애인들은 자연스레 그 제도에 불만을 갖는 거고요. 이미 만든 제도를 바꾸는 데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잖아요. 결국 ‘제도 만들어 줬는데 왜 이렇게 불만이 많아?’라는 반응을 낳죠. 장애인들은 그런 시선에도 제도를 바꾸기 위해 싸워요. 길거리에 나와 싸우는 건 본인들의 목숨을 건 일이에요. 실제로 길에서 죽는 장애인도 정말 많고요. 유니버설 디자인도 장애인들이 몇 년간 길거리에서 싸워 만든 거예요.

  최근 사회적으로 제일 대두하는 문제가 장애인 탈시설화예요. 장애인도 본인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지, 우리가 그들을 시설로 보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근데 우리나라는 전부 시설로 보내 버려 장애인이 사회로 나올 수가 없어요. 장애인을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로 바라봐야 해요. 그들에게 분명 능력이 있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고 시설에 가둬 버려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장애인을 쉽게 만날 수 없어요. 익숙하지 않은 낯선 존재니까 배타적인 반응이 나오는데, 이게 차별과 혐오로 나타나는 거예요.

 

  Q.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이 무엇인가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그림, 퍼포먼스 등의 예술인 만큼 페스티벌을 열고 싶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별 없이 한 공간에서 서로 소통하고 친구가 되는 페스티벌이요. 마주할 공간이 없으니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겠어요. 함께 만나는 지점이 많아졌으면 하고, 그런 창구를 계속 만들 거예요.

 

  Q. 사회적 약자와 함께 살아갈 대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회가 장애인을 약자로 구별하잖아요. 사실 저는 장애인 중에서 강한 사람이 되게 많다고 생각해요. 반면 비장애인 중에서도 정신이 약한 사람이 있고요. 우리는 몸이 불편한 사람만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우리도 일상에서 손가락을 베이거나 팔이 부러지면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잖아요. 하지만 이걸 장애라고 표현하지는 않죠. 하지만 내가 지금 건강하다고 해서 이 건강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건 아니거든요.

  지하철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노인, 어린이, 짐이 많은 사람 등 모두가 이용하잖아요. 사실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이 이동권 보장을 위해 싸워서 만들어 낸 시설이에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의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이 쌓이고 쌓이면 장애가 어떤 사람을 설명하는 전부가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질 것이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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