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자 80만 시대, 그들이 사는 세상
희귀질환자 80만 시대, 그들이 사는 세상
  • 장윤서 기자, 허진 기자
  • 승인 2021.05.28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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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러운 치료비, 정부 지원과 사회적 인식 필요해

  5월 23일은 희귀질환자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제정한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다. 약 4년째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기념품을 전달하며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환자가 많다. 희귀질환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해야 할 제도적 지원은 무엇일까?

 

  꾸준히 증가하는 희귀질환자
  따라가기 벅찬 특례제도

  희귀질환은 희귀질환관리법상 유병인구가 2만 명 이하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파악할 수 없는 질환을 의미한다. 2020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에 따르면 희귀질환자는 약 80만 명이다. 2014년 기준 69만 4,695명이 희귀질환을 진단받은 것과 비교했을 때 7년 동안 약 10만 명이 증가했다.

  정부는 올해 초 희귀질환 산정특례제도(이하 산정특례)에 87개의 질환을 추가했다. 희귀질환 산정특례란 희귀난치성질환자가 등록절차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한 경우 본인부담률을 10% 경감해 주는 제도다. 2009년 산정특례 도입 이후 대상 질환을 계속 확대해 왔고, 올해 1월 기준 1,086개의 희귀질환에 대해 산정특례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환자 수가 극히 적은 극희귀질환자는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더 낮아 오히려 산정특례 대상에서 제외당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극희귀질환자를 위해 2016년부터 극희귀 및 상세불명 희귀질환(기타 염색체 이상질 환 포함) 제도를 도입했으나 아직까지도 대상 범위와 등록기준은 제한적이다.

국내 희귀질환자 현황 분석표다. 희귀병 환자 수가 2008년 약 23만 명에서 2018년 약 50만 명으로 꾸준히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출처/질병관리본부,가천대 산학협력단>

 

  시장성이 없는 신약개발
  국내 신약 개발 저조해

  제약회사들은 경제적 문제로 희소병 치료제 연구와 개발을 기피한다. 희소병의 치료제는 소비자가 적어 시장성이 낮기 때문이다. 연구와 개발의 의지가 있더라도 희귀질환 통계가 부족하고 임상시험 및 효과평가의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한 사례는 거의 없다.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화이자 △MSD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와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들 또한 소수를 위한 희귀병 치료제보다 소비자를 최대한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약을 만드는 것을 택한다. 국내 제약회사가 희귀질환 신약을 만들어도 해외로 수출할 수 없어 도산하기 쉬우므로 국가가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치료를 위해 헤매는 환자들
  지원 제도의 한계

  2016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진행한 ‘희귀질환 건강보험 보장확대 방안 연구’에 따르면 국내 희귀질환은 1,066종이다. 이 중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은 40% 가량인 400여종에 불과하다. 치료제가 있어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내 구매가 가능한 경우에도 비급여인 경우가 많아 치료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산정특례로 지원받더라도 의료비가 연간 1,000만 원 이상인 환자가 14.9%에 이른다. 가계 생계비 20%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는 경우도 절반 이상이다.

  희귀질환자는 산정특례에 등록하려 해도 조회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환자가 병명을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정확한 상병코드를 알 수 없어 실제로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다. 이런 상세불명 희귀질환자들은 일반 희귀질환자들보다 특례기간이 짧아서 1년마다 재등록을 해야 산정특례를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산정특례는 보험급여로 인정하지 않는 비보험진료(시력교정술, 치과보철료, 도수치료 등)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

  신현호 의료전문변호사(이하 신 변호사)는 “모든 희귀질환과 비보험급여에 대해 보험이 적용 안 되는 것은 건강보험제도의 한계다”며 “국가차원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희귀질환자들이 더불어 사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신·경제적 지원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99년도부터 희귀센터에서 희귀 의약품을 공급 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해 제공하고 있다.<출처/의학신문>

 

  치료제 공급 부족,
  불안에 시달리는 환자들

  우리나라는 희귀필수의약품센터(이하 희귀센터)에서 희귀질환 치료제를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희귀센터가 예산 부족으로 인해 희귀질환자에게 처방하던 약의 재고 확보가 어려워지며, 치료제 지급을 중단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작년 1월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환아 가족은 희귀센터의 예산 부족으로 향후 에피디올렉스의 재고 확보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환아의 어머니는 “하루 이틀 먹는 약도 아니고 2년 이상 복용해야 할 약이다”며 “재고가 없어 아이가 먹는 약이 끊길 것 같아 걱정이다”며 속상함을 전했다.

  희귀센터의 예산이 불안정해지면 환자들이 직접 치료제를 수입해 약품을 수령해야 하므로 비용 부담이 증가한다. 실제로 예산 공급이 들쑥날쑥한 문제로 환자의 안전에 위협이 발생했다. 예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재고를 다 소진하면 환자가 먹는 약의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의료관광 떠나요’
  국내와 다른 해외 시스템

  미국은 1983년 세계 최초로 희귀의약품 개발을 촉진하는 희귀의약품법(Orphan Drug Act)을 제정했다. 치료제 연구개발에 대한 직접적인 재정 지원 및 허가절차상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일반 신약보다 긴 시장독점기간을 부여했다. 희귀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회사에 세제 혜택을 주고 임상 시험이 끝나면 6개월 안에 허가토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2000년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제도 및 연구개발 촉진제도를 운영하며, 유럽의약품청 EMA(European Medicines Agency)를 통해 희귀의약품을 지정 및 허가하고 있다. 유럽 공동체 연구 및 기술 개발 기본계획의 일환으로 희귀질환과 관련한 포괄적 연구 협력도 강화 중이다. 유럽 내 4,625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이 중 13%가 임상시험이다.

  일본은 2015년 11월부터 재생의료촉진법을 시행했다. ‘선 안전성 후 유효성’ 입증을 골격으로 한 법안에 따라 반드시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아도 인증받은 업체가 만든 치료제를 의료기관에서 처방할 수 있다. 이는 줄기세포, 유전자치료 및 세포치료제 등 재생의료의 상당 부분이 희귀난치질환자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각광받았다. 의약품으로 허가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바이오의약품 기업은 일본으로 건너가 줄기세포를 배양해 처방했다. 이 때문에 국내 희귀질환자들이 일본으로 의료관광을 가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일, 대구·경북권 거점센터에서 희귀질환 극복의 날을 맞이해 희귀병 환자 및 가족들을 응원하는 행사를 개최했다.<출처 / 경북대 희귀질환센터>

 

  희귀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과 더불어
  적극적인 제도 마련 필요

  극희귀질환자가 산정특례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염두할 때, 정부가 희귀질환의 적용 대상 확대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희귀질환의 성격상 산정특례에 포함되지 않은 환자가 생길 수밖에 없지만 적용 대상의 점진적 확대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은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개발 사업에 인센티브를 명시해 희귀의약품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다른 약품과 별도로 규정한다. 우리나라는 치료제 개발 자체의 어려움도 있지만, 제약회사들이 경제성을 이유로 개발을 기피하고 있어 미국처럼 희귀병 치료제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더불어 정부는 △연구 △허가 △약가 각 단계에서 신약개발을 위한 적극적인 유인책을 펼쳐야 한다. 신 변호사는 “희귀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탕이 돼야 하며, 국회가 적극적으로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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