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헤매던 날들은
하염없이 헤매던 날들은
  • 정해인 편집장
  • 승인 2021.06.0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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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는 자꾸 조급해진다.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운동, 첼로, 독서 토론이나 알고리즘 공부 등 닥치는 대로 일을 벌이고 있다. 퇴임을 앞두고 신문 발행 작업이 없는 나날을 떠올리니 갑자기 막연해진 탓이다. 내 생활은 신문사가 온통 잠식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친구가 “네 안에 편집장 자아가 너무 큰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도서관 402호 신문사 기자실에 ‘기자’ 로서 처음 발을 디뎠던 순간을 기억한다. 2019학년도 2학기 추가모집에 지원하며 선후배와 부대끼는 것을 가장 걱정했으나, 내가 들어오기도 전에 윗 기수는 전원 중도 사임했다. 실제로 전 편집장 선배는 퇴임 전, 주간 교수님과 폐간을 논의했다. 나를 포함한 3명의 수습 기자가 만든 신문은 지금 보면 신문이 아니라며 우스갯소리로 태워 버리고 싶다고 할지언정, 당시엔 퍽 뿌듯했다.

  그렇게 나는 수습기자로 입사한지 한 달 만에 편집장 직책을 달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정기자 명함이 내겐 없는 까닭이다. 내가 낯선 업무에 힘겨워하는 동안 신문사는 내내 폐간의 문턱에 서 있었다. 막 들어간 수습기자가 신문 발행마다 원고지 50매 이상의 기사를 썼다. 내 지난 여덟 번의 계절은 폐간을 간신히 막고 신문사를 정상화하려는 안간힘의 연속이었다. 동기로 함께했던 모두가 떠났음에도 홀로 남았던 이유는, 내 첫 신문을 만졌을 때 손에 묻었던 잉크가 내 피부에 책임감으로 스며들었던 것일까 생각한다.

  사실, 인문학도도 기자 지망생도 아닌 공대생이 신문사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것은 그 자체로 꽤나 귀찮은 일이다. 편집장으로서 나를 소개할 때마다 왜 하냐는 반응을 마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업을 놓치고 과제에 허덕일 때마다 전공 공부나 취업에 도움도 되지 않 을 일 그만 관두라는 소리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달리 대단한 사명이 있던 것도 아니기에 ‘한번 시작한 일인데 끝까지 해야죠’라는 미약한 변명은 기각당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나름의 진실이었다. 어쩌다 보니 시작한 학보사였고, 편집장이었다.

  신문사를 하는 목표는 ‘중도 사임하지 않고 퇴임하기’였다. 본 기사를 작성하며 비로소 내가 끝에 다다랐음을 실감한다.

  여론면 하단 편집장 난에 내 이름이 찍힌 신문 19부는 그 자체로 보람이었다. 그래서 자꾸 걱정이 든다, 내가 이렇게 아등바등 유지한 신문사가 또 없어지면 안 되는데.

  신문은 독자가 있어야 의미가 있다. 대학언론에 위기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아주 오랜 일이기에 학보사 기자들은 곧잘 ‘학우들이 외면하더라도 우리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안다.

  그러니까 내 덕우들에게 부탁한다. 내 시간과 노력을 담은, 더 이상 나의 신문사일 수 없는 덕성여대신문사가 맥 없이 사라지지 않게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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